[2장 우리 - 여행도 솔직해야 즐길 수 있다]
여행이라는 말은 사람을 설레게 한다. 숨 가쁜 일상에서 벗어나 맞이하는 휴가는 언제나 달콤하다.
그런데 여행 스타일이 전혀 다른 사람이 함께 여행을 떠났을 때도 이 행복한 시나리오가 유효할까. 자칫 잘못하다가는 파국을 맞이할 수도 있다. 나와 내 남편이 이랬다. 각자의 여행 스타일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탓에 우리는 신혼여행을 가서도... 싸웠다.
남편은 여행을 좋아한다. 특히 세계 여행을 장기간 다니며 꽤 다양한 곳을 섭렵했다. 최근 방송에 나오는 이색 관광지들을 남편은 오래전 이미 다녀오기도 했다. 여행에 큰 의미를 두지 않던 나는 남편의 이런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흥미로운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행 가서 뭐 할래'라는 질문이 오고 가는 순간부터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들이 나를 급습했다. '안전제일주의자'인 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저 무난한 여행지에 가서 볼거리와 먹거리를 즐기다 오는 것이 나의 일반적인 여행 패턴이었다.
반면 남편은 내가 생각해보지도 못한 여행장소를 제안한다. 또한 평범한 여행지라도 그곳에서 일상적으로 해볼 수 없는 활동들을 즐겼다. 우연히 보았던 남편의 여행 사진들은 내 부담감을 더 촉발시켰다. 패러글라이딩, 스킨스쿠버를 비롯해 스노보드, 사막투어까지 모두 나와 거리가 먼 활동들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자꾸만 나의 색깔을 잃어 갔다. 여행에 대해 많이 아는 것도 없었을뿐더러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여행 코스에 맞춰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새로운 활동을 해보면 나도 그것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최면을 걸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기란 오래가지 못했다. 남편과의 하와이 여행을 앞두고 참았던 갈등이 터져 버렸다. 하와이는 해양 액티비티의 천국이다. 하지만 앞선 9화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물을 정말 무서워한다. '하와이까지 간 마당에 언제까지 재미없게 놀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두려움을 조금 참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름의 센 척을 하며 물놀이에 도전하기로 한 나는 장비부터 구입했다. 다양한 스노클링 장비를 구매하면서 설렘보다는 긴장감이 나를 덮쳤다. 아무리 상상을 해보아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출국 당일, 여행을 떠나는 것은 정말 좋았지만 가서 해야 할 활동들을 떠올리니 숨고만 싶었다.
그렇게 예약해 둔 스노클링 명소 해변을 방문해 첫 스노클링에 도전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모든 사람들이 나만 빼고 즐거워 보였다. 몇 번의 시도를 해보았지만 나를 삼킨 공포감은 떠나갈 시늉조차 안 했다. 한계에 부딪힌 나는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하고는 그늘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남편도 어쩔 수 없이 남은 시간 홀로 스노클링을 해야 했다.
정확히 그때부터였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시작으로 여행을 망쳤다는 슬픔에 남편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남편은 가만히 있다 봉변을 당한 꼴이다. 남편이 좋아할 것 같아 내 나름의 노력을 했는데 도저히 안 됐다는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니 남편은 놀란 눈치였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동안 활동적인 여행을 좋아한다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내 자신의 여행 스타일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남편과의 여행은 20대 때 했던 친구와의 여행과 전혀 달랐다. 평생 함께 지낼 사람인만큼 내 자신을 저버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솔직하지 못한 나로 인해 싸움까지 갔던 그때의 기억 덕분인지 요새는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적당히 조합해 여행 경로를 짠다. 여행을 가서 싸우는 횟수도 많이 줄었다.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하지 못할 때 그 관계는 왜곡되고 만다. 부부 관계는 둘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갈등이 생기는 부분은 중간 지점을 찾아나갈 때 건강한 부부 관계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