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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런 Aug 02. 2024

수영은 초면입니다만

[2장 우리 - 가지 못한 곳을 가보다]

누구나 도전해보고 싶지만 용기가 부족해 망설이는 분야가 있을 것이다. 내게는 '수영'이 바로 그렇다. 나는 꼬박 20여 년이 넘도록 물을 무서워해왔다. 물놀이를 가서도 수영을 못하는 나는 멀찌감치 서서 물만 구경했다.


처음부터 물을 무서워했던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수영을 좋아하시던 아버지와 물놀이를 다니곤 했다. 유치원 사진을 보아도 수영장에서 활짝 웃고 찍은 사진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내가 수영과 멀어지게 된 데도 그럴싸한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 가족과 계곡으로 놀러 갔다가 여느 때처럼 물놀이를 했고 나도 모르게 수심이 깊은 곳으로 흘러갔던 걸까.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아버지가 구해주셨던 기억이 있다. 잠깐이지만 물속에서 허우적대며 숨을 못 쉬었던 순간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한 순간에 생겨버린 공포심은 나를 물과 멀어지게 했다.


생각보다 수영을 못하는 것은 불편했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수영복이며 스노클링 장비 등을 챙기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내게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수영뿐만 아니라 물이 무서워 아예 들어가지 못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리고는 언젠가 멋들어지게 수영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저 생각으로만.


언젠가 수영을 배워볼까 하는 용기가 불끈 생기기도 했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 탓인지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그렇게 나와 수영은 연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다 물과 친한 남편을 만나게 되고 자꾸만 수영이라는 활동에 노출되게 됐다.


남편은 수영과 물놀이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물을 엄청 좋아하고 스노클링과 스킨 스쿠버도 섭렵하고 있었다. 내게는 별세계 사람이었다.


남편과 휴양지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휴양지인 만큼 물놀이는 모든 곳에 존재했다. 종종 수영을 못하는 나 자신을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어 처음에는 남편에게 내 수영 실력을 솔직하게 모두 털어놓지 못했다.


남편도 그저 적당히 수영을 잘 못하는 정도라고 나를 생각했을 터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보트에서 뛰어내리는 스노클링 체험을 앞두고 있었다. 배에는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탔었는데 어느새 나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물속에 뛰어들었다.


이제 내 차례였다. 물을 보니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끝이 어딘지 보이지도 않는 망망대해에 몸을 던질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찔했다. 구명조끼도 내 공포심을 잠재워주지 못했다. 그렇게 눈을 질끈 감고 물에 뛰어들었고 순간 패닉에 빠졌다. 스노클링 장비 이용법을 배우고 훈련을 했지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공포심에 휩싸이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그저 제발 여기서 나가게 해 달라는 말만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물 밖으로 나와 수건으로 흥건한 물을 닦으며 자책했다. 내가 또 물과의 싸움에서 졌구나. 그리고 내 공포심을 남편뿐만 아니라 생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낱낱이 다 보여주고 말았구나. 자괴감에 사로잡혀 우울해져 있을 무렵 남편의 한마디는 정신을 차리게 했다.


'그럴 수도 있지.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어.‘


순간 아차했다. 나는 그동안 배우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제대로 된 행동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나는 물 공포증을 방패 삼아 수영을 다시 배워보려는 시도를 아예 안 하고 있었다. 남편은 자신의 옛 경험을 알려주며 대단한 수영이 아니더라도 생존 수영정도도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줬다.


그날 이후, 남편과 함께 집 근처 수영장을 등록해 수영을 배우고 있다. 아직 너무나 초보라 진도가 매우 늦지만 이렇게라도 배우고 싶었던 활동을 시도해 보는 것에 감사했다. 남편의 한마디가 없었더라면 아직까지 나는 수영에 도전할 생각도 안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남편과 함께 지내며 내 삶이 좀 더 풍부해진 기분이다. 익숙한 길만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분야에도 도전해 볼 수 있는 건 굉장히 소중하다. 아마 혼자였더라면 그저 다른 세상이라 생각하고 직접 행동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서로 다르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러한 다름이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해주는 또 다른 원동력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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