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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육도씨 Dec 13. 2021

바닐라 캐모마일 밀크티

21.12.12

 스무 살이 지난 지 한참 되었지만 아직도 제대로 어른이 되긴 한 걸까 할 때가 있다. 몇 번 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언급하기는 했지만 단순히 나이가 차고 술을 마셔도 된다 그런 거 말고, 친한 친구들이 운전면허를 땄다거나 결혼을 한다거나 아이를 낳았다거나 하는 소식을 들으면 '우와.. 어른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있어 너무나 먼 미래 아니면 오지 않을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래 나도 으른이야! 아유 다 컸다 다 컸어' 싶을 때가 있다.  바로 은행에 가서 일을 본다거나, 세금을 내고 돈 관리를 해야 할 때. 마지막으론 하기 싫은 일도 울면서 해낼 때. 

사실 지금 잠깐 맡은 일이 있어 정산 같은 걸 하고 있는데, 이쪽으론 문외한이라 어떻게 하는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는지 머리를 쥐어뜯어가면서 검색도 하고 블로그도 찾아보고 매뉴얼을 뒤적거렸다. 나는 내가 갑자기 이런 일을 맡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회계랑 정산이요? 저는 이과 출신도 아닌데요?(사실 회계는 이과계열이 아니라고 회계 전공인 친구가 알려줬다) 사칙연산도 겨우 한다고요.

 도대체 뭘 믿고 날 시키신 거지? 내가 생각한 일은 이게 아닌데 싶지만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언제 어디선가 써먹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 하기 싫어도 이번 달만 참자 하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산 시스템도 볼 때마다 이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빼먹은 결재 기안이나 증빙서류도 많아서 담당자님한테 혼나기 직전이다. 무사히 끝나기를.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는 역시 캐모마일인가 싶었다. 그냥 마셔도 맛있지만 예전에 홍대에 있는 카페 요호에서 재스민 밀크티를 마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재스민 밀크티는 홍차 대신 재스민을 진하게 우려서 밀크티로 한 것 같은데 향이 너무 좋아서 홀짝 걸릴 때마다 감탄을 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샴푸나 화장품 냄새가 난다고 느낄 수도 있다. 러시의 노란색 샴푸바 향과 비슷하다) 

집에 있는 캐모마일 티백엔 바닐라와 꿀 향이 가향되어있어 그냥 마셔도 달콤한 냄새가 가득하다. 그래서 캐모마일도 재스민 밀크티처럼 해서 마시면 어떨까 싶었다.

 로열 밀크티처럼 캐모마일 티백을 끓는 물에 진하게 우리다가 우유를 넣고 끓여보기도 했는데, 제일 맛있었던 건 머그컵에 캐모마일을 우린 다음 건져낸 뒤에 바닐라빈 파우더를 넣고 섞어 마시는 것이었다. (바닐라 '라테' 파우더가 아닌 바닐라빈과 탈지분유가 섞여있는 파우더이다) 아무래도 로열 밀크티처럼 하려면 티백을 더 많이 넣어서 우려야 할 듯하다. 


 실행하기 전까지는 생각만 해도 너무 어려운 일들이 많다. 그런데 막상 실행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다. 여전히 숫자에 약해서 0의 개수가 맞는지 숫자를 제대로 입력했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실수하기도 한다. '그래도 한 번 해봤으니까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어' 하는 게 성장한 건가 싶다. 다음에 또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앗 아니요 저는 아무래도 일정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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