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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육도씨 Jan 23. 2020

매실차(?) 매실주(?)

19.11.08

애초의 계획은 그것이었다.
매실 청을 담근다 - 매실 청을 담갔던 매실로 매실주를 담근다.

열탕한 병에 매실과 설탕을 가득 채운다.
매실 청 담그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대학시절 자취하면서 혼자 담가본 적이 있기 때문에 실패할 거란 걱정은 들지 않았다.
곰팡이만 생기지 않으면.

몇 개월이 흘러 매실 청을 담근 병을 개봉할 때가 되었다.
다행히 곰팡이는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의외의 변수가 생겼다.

뚜껑을 열자 흘러나온 건 매실 청의 향이 아닌 알코올 향이었다.
매실 청이 아닌 매실 주가 되어버린 것이다.

성격이 급한 주인을 닮아 매실청이 되는 과정은 건너뛰고 매실 주가 되어버린 것인지,
설탕과 매실의 비율이 잘못된 것인지.

아무래도 원인은 청매실이 아닌 홍매실을 써서 그런 것 같다.
보통 매실청을 담글 때는 초록빛을 띠는 청매실을 사용하는데,
내가 이번에 담근 건 홍매실이었다. (사실 여태까지 청매실만 봐와서 매실이 익으면 초록색 - 노란색 - 빨간색으로 변하는 줄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매실이 익으면서 과육의 당도나 과육의 상태가 변하면서 이런 결과를 초래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래도 일단은 기분 탓일 거라 생각하고 매실 청 몇 숟갈에 따듯한 물을 부었다.
매실청의 단맛 그리고 끝은 역시나 매실의 새콤한 맛 대신 술맛.
어쩐지 글을 쓰면서도 술의 기운이 알딸딸하게 올라왔다.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니까.
어차피 매실 주가 될 운명이었으니까 빨리 되면 좋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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