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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육도씨 Jan 31. 2020

아마도, 거의 뱅쇼

19.12.30

나는 더위도 잘 타지만 추위도 잘 타서 얼어 죽기 싫어 웬만하면 겨울엔 따듯한 음료를 마신다.
대학 시절 겨울이면 친한 동생이 알려준 라푼젤이라는 독일 와인을 사다 같이 전자레인지에 데워 마시곤 했다.  

 하지만 졸업하고 본가로 와서부터는 라푼젤을 파는 곳을 찾지 못했다.


 아직도 겨울이 되면 종종 그 맛이 자꾸 생각난다.

아쉬운 대로 집에서 만들기로 했다.
뱅쇼는 프랑스어로 vin(와인) chaud(뜨거운) 말 그대로 뜨거운 와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뱅쇼를 해 먹기로 한 시점에서 우리 집에는 와인이 없었다.


그 와중에 냉장고에서 잠들었던 베르무트를 꺼냈다.
이 친구로 말하자면 마티니를 만들 때 진 3 베르무트 1을 사용하여 진을 다 쓰고 이 친구만 덩그러니 남을 지경에 처해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베르무트는 백포도주 75%로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75%면 그래도 거의 와인이랑 다를 바 없다는 판단 하에 뱅쇼의 재료로 발탁되었다.
그 나머지 재료 또한 비슷하게 대체품이었다.


오렌지 대신 말라서 크기가 줄어든 귤, 정향은 예전에 다 쓰고 없어 피클링 스파이스에 들어있는 약간을 사용했다.
(별개의 얘기지만 피클링 스파이스는 고기 구울 때 사용해도 맛있다)
계피는 시나몬 스틱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우리 동네에 그런 걸 팔 리가 없다. 아쉬운 대로 너무나도 정직한 두꺼운 나무껍질 같은 계피를 사용했다.


이 계피에서 매운맛이 너무 강하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뜻밖에도 매운맛은 거의 안 나고 오래 우리면 단맛이 나왔다.


 냄비에 재료를 모두 넣어 끓이면 뱅쇼가 완성된다. 준비 과정에 비해 만드는 건 참 간단하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인터넷에 뱅쇼 스파이스를 따로 팔기도 한다.


글뤼픽스라고 글뤼바인을 만드는 티백도 있기는 하지만 해외에서 주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그냥 다음에는 뱅쇼 스파이스를 사서 써야겠다.

맛은 대중 재료는 비슷하게 들어가서 맛도 거의 비슷한 거 같기도 하다. 다만 75%와 100%에는 차이가 있어 미묘하게 와인과는 다른 향과 맛이 난다.

올해도 이렇게 대충 만든 뱅쇼처럼 어떻게든 얼버무려 버텨내기는 했다.
내년은 적어도 올해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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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음주는 몸에 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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