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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육도씨 Apr 24. 2020

삐에르 앙드레 보졸레 누보 2004

2020.04.23

우리 집안사람들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집안을 뒤엎어 벽을 새로 칠하고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집안을 뒤지다 창고에서 와인을 발견했다.
10년이 훨씬 넘어간 와인이 몇 병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거였다. 우리 집에 고가의 와인이 있을 리 없으니 걱정 없이 뜯기로 했다. 우리 집안사람들은 주로 소주 아니면 맥주 파라 그런지 와인에 그리 관심이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나마 내가 그나마 조금 아는 와인은 모스카토 다스티 아니면 보졸레 누보다. 그도 그럴 것이 유학 시절 가을이 되면 보졸레 누보에 대한 기사가 뜬다던지 몇 달 전부터 편의점에서 예약 주문을 받을 정도로 인기가 많아서 알게 되었다.

보졸레 누보의 누보는 프랑스어로 새롭다는 의미로 보졸레 지방에서 나온 햇와인을 뜻한다.
와인이라고 하면 오래 숙성할수록 좋다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 보졸레 누보는 빨리 마실 수록 좋다고 한다.
그런데 10여 년이 훌쩍 넘게 있었으니 아마 신선한 맛은 아닐 것이다.
 좀 더 일찍 발견했으면 작년에 뱅쇼 재료로 사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코르크 마개를 뽑으려고 했는데 오래된 나머지 삭아서 중간에 부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머지는 병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뭔가 마시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도 아까워서 커피 필터에 한번 걸러 마시기로 했다. 코르크 부스러기와 함께 불순물이 걸러지고 나니 와인이 한 층 맑아졌다.

한번 걸러서인지, 보졸레 누보라서 그런지 숙성이 되어도 떫고 묵직하기보다는 산미가 있고 가벼운 맛이었다. 또 건포도 같은 향이 났다. 같은 포도니까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무래도 내 후각과 표현력으론 소믈리에가 되기에는 글러먹은 듯하다.

아직 창고에는 오래되어 색이 변한 화이트 와인과 왜인지 모를 브랜디가 있고, 거실엔 그것보다 더 오래되었을 엄청 큰 병에 담긴 인삼주가 집에 있다. 나중에 몰래몰래 야금야금 마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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