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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육도씨 Jun 10. 2020

영화감상문 - 중경삼림

파인애플 통조림 주스와 하와이안 피자

중경삼림

단순히 망각 때문인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생각의 변화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망각이란 때로는 좋은 기능인 듯하다.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오랜만에 보면 처음  것처럼 감회가 새롭다.
 근래 날이 부쩍 더워지고 비가 오고 흐리고 맑고를 반복했다. 저번에 비 오는 날엔 미스 리틀 선샤인을 봤지만, 사실    왕가위 영화를 보면  특유의 외롭고 축축한 느낌은 배로 더해진다. 왕가위 감독의 많은 명작이 있다. 그중에서도 이번엔 중경삼림을 골랐다. 중경삼림은 투명 수채화 같은 느낌이 들어 비가  그칠  같은  보기 좋을  같았다. 화양연화도 좋아하지만 화양연화는 짙은 유화의 느낌이 들어 여름철 태풍이 오고 비가 쏟아져서 낮에도 어둑어둑 해지면 보려고 아껴놓았다.

중경삼림은 금발 가발에 레인코트와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마약 중개인 노랑머리 여자(임청하) 만우절에 실연을 당해 장난이라고 여겨 한 달이라는 기한을 두고 유통기한 5 1 자의( 여자 친구 메이가 좋아했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으던 하지무(금성무)
자신의 여자 친구를 위해 단골 가게에서 매일 샐러드를 사 가던 경찰 633(양조위)  단골가게의 점원으로 경찰 633 짝사랑하고 그가 실연을 당하고 그의 집에 남은  여자 친구의 흔적을 몰래 조금씩 바꿔놓는 페이(왕페이)  남녀의 인연을 두 가지 에피소드로 연결하여 홍콩의 밤과 낮을 그려낸 영화이다.

 중경삼림에서 금성무와 양조위  누가 좋은가 하면 나는 금성무였다. 하지만 양조위와 왕페이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았다.
경찰 633(양조위) 승무원 여자 친구는 그의 단골 식당에 그의 집 열쇠와 편지를 두고 떠난다.
  혼자가  633 사물에 말을 건다  써가는 비누에 자신감을 가지라고 하거나 구멍이 숭숭   그대로 걸래 짝이 되어버린 행주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보고 그만 울라고 하는 .
  하루 동안 충족시켜야 하는 대화의 양이 있다고  , 대화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거나, 대화할 상대가 없다면 다른 식으로 해소하게 되는  같다. 하고 싶은 말을 글로 남기거나, 혼잣말을 하거나. 나의 혼잣말이 늘어난 것도 내가 자취할 때부터인 듯하다. 집안 어딘가에 있을 열쇠나 이어폰 등을 찾다가도, 작업을 하다가도 컴퓨터에게 말을 걸곤 한다. 물론 돌아올 대답을 기대하진 않지만.(오히려 대답이 돌아오는 게  이상하다) 실제로 영화  등장인물보다  외로웠을 사람은 왕가위 감독의 부인이었을 것이다. 왕가위 감독의 인터뷰를 담은 (WKW왕가위 시네 21 북스)에 의하면 그의 부인은 임신 중에 홀로 있는 시간이 늘자 대화할 상대가 거울 속의 자신밖에 없어 거울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고 한다. (그 대목에서 감독의 억장도 무너졌지만, 제삼자인 내 억장도 같이 무너졌다)

 와중에 633 짝사랑하던 단골 식당 점원 페이는 그의  여자 친구가 두고 간 열쇠로 633 집에 몰래 들어가  여자 친구의 흔적 대신 다른 물건으로 조금씩 바꿔놓기 시작한다.
실제 일어난 일이었다면 무단 주거침입에 신문 기사로  법한 소름 돋는 일이지만, 픽션이기도 하고, 633 직업은 경찰이다. 무엇보다도 왕페이란 배우의 매력이 그저 귀엽고 엉뚱한 사람의 짝사랑 방식이라고 나의 멱살을 잡고 납득을 시켜줬다. 633 그렇게 물건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동안  여자 친구가 그랬다고 착각을 한 것인지 사람이 무던해서  인식하지 못한 건지 페이가 자기 집에 있는 걸 발견하고서야 알아차린다. 그마저도 페이의 능청스러움에 말려들고 만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보면 흔히 아는 클리셰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다음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빠져든  같다. 왕가위 영화를 보다 보면   인물들이  저렇게 고독해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배우들 특유의 분위기도 한몫할 테지만 단순히 외로운 게 아니라, 누군가 옆에 있어도 외로운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봤던  중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해피 엔딩으로 나는   적이 없다.  안되거나, 해피로 이어질   열린 결말이거나.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여운이 남는지도 모른다. 왕가위 감독은 외로운 것이 슬픈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인물들이 좁은 방에 살아가는 걸 고립된 것이 아닌 자신만의 세계를 사는 것이라고. 나도  생각에 동의한다. 약간 결이 다를 수도 있지만, 예전엔 브리짓 존스의 일기나 파니 핑크 같은 영화를 보고 (남자 주인공을 만나기  까지만)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씁쓸했다. 게다가 내가 사랑하는 영화 파니 핑크(영제 Nobody loves me) 원제의 뜻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다. 여전히 나의 근미래이자 현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지금은 전혀 슬프다거나 씁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평생 그렇게 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혼자 사는 게  어때. 편하기만 하고만.


오랜만에 다시 보고 알았는데, 많이 패러디되고 회자되었던 하지무(금성무)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겠소’라는 대사는 사실 사랑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었다면 기한이 영영 지나지 않길 바란다.  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 하룻밤 스쳐 지나간 인연에게서  메시지로 느낀 감정에 대한 기억을 사랑이라 하면 사랑이라고도   있겠다. 하지무는 그렇게 실연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고 실연당한 지 한 달이 되는 날이자 자신의 생일 아침을 맞는다.

아무튼 그래서 구색을 끼워 맞춰 이번 영화 푸드는 파인애플 통조림. 정말 메이가 두리안을 안 좋아해서 다행이다. 발견한 통조림이 파인애플 하나 분량의   하나뿐이라니. 당황스럽긴 해도 그냥 집어 들었다. 금성무는 영화상에서 파인애플을 그렇게 요리해먹지는 않았지만, 통조림  통을 그냥 먹긴 아쉬워서 파인애플 주스와 냉동 피자에 파인애플 조각을 올린 급조 하와이안 피자를 만들었다. 디저트류 외에 들어가는 따듯한 과일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파인애플 주스를 만들 땐 통조림보다 생과일을 쓰는 편이 더 맛이 진하고 맛있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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