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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월 Nov 21. 2023

"인류애 떨어진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을 텐데.


 주변 친구들과의 이야기에서 인류애가 떨어진다는 말을 자주 본다.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걸어가며 담배를 피우며 다른 사람들에게 담배 연기를 씌우는 사람이나, 편의점에서 음식을 먹고 그 흔적을 그대로 늘어놓고 치우지 않는 사람들이나, 주차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주차장에 만차가 되었다는 푯말과 안내를 함에도 차를 억지로 밀어 넣고 주차장의 길을 막아가면서까지 주차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인류애가 떨어진다'라는 말을 한다.


 '인류애가 떨어진다'는 말은 특정 사람'들'이, 일면식도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스트레스를 받게 만드는 행위들을 보며 인류애가 떨어진다는 말을 하게 된다. 단순히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무례하고 상처 주는 행동을 한다면 그건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럴까' 정도의 생각만 하게 되는, 사람의 개인에 대한 판단으로 넘어가지만 많은 수의 사람들이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피해를 주는 모습에서 인류애가 떨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이 생각에서 '인류애'라고 하는 것은 '생판 모르는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가?'라는 말로 이어진다. 얼굴도 모르는 청소 노동자들을 위해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줍는다던가, 사고 난 차량의 탑승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자신의 일처럼 달려들어 차 창문을 깨고, 소화기를 뿌리며 사람을 구출해 내는 모습을 본다던가, 트럭 적재의 문제로 도로에 적재물이 쏟아져 차량 통행이 불가능해진 도로의 잔해들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일제히 모여 치우는 모습을 본다던가.

 그런 모습에서 우리는 인류애를 느낀다.


 그렇다.

 우리는 자신에게 하등 득될 것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굳이 친분은커녕 일면식조차 없는 이에게 자신의 체력을, 시간을, 돈을, 노력을, 관심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들. 타인에게 '기브 앤 테이크' 개념으로 내 삶의 일부를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내어주는 행위를 보며 인류애를 느끼는 것이다.


 '인류애'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헌신하듯 행동하는 것을 그대로 같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똑같이 하는 그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한 개인을 사랑하는 것은 물론 특정 행위, 혹은 물건을 사랑하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어려운 일인데 때로는 추잡하고 꼴도 보기 싫어질 때도 있는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일은 오죽 어려울까.


 나는 주변 친구들보다 확연히 '인류애 떨어진다'라고 표현하는 일이 적다.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하다.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렇구나..'라는 공허한 공감 비슷한 것만 떠오를 뿐이다. 이미 심해 밑바닥에 가라앉은 돌멩이는 더 이상 굴러 떨어질 일이 없으니.


 스스로의 모난 부분과 인간성이 떨어지는 면들을 많이 인지하고, 강박적으로 신경 쓰다 보니 다른 이들의 그런 모습이 유난히 눈에 밟히게 된다. 자신이 콤플렉스로 인지하고 숨기려 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보일 때 유난히 격한 반응이 나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가령, 깔끔한 사람이고자 해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샤워하고 하루 세 번 이상 양치하며 3일 간격으로 치실질을 하는데 점심시간 이후 다른 사람 치아에 고춧가루가 낀 걸 보면 '저걸 말해줘야 하나'라는 생각을 넘어 거부감, 혐오감까지 치민다던가).


 근데 인류애에 대한 기대치가 전혀 없다는 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애초에 기대도 하고 있지 않던 사람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이 확 달라 보이듯이 다른 사람들은 특별하게 느끼지 못할 정도의 선행에도 크게 감명을 받는다. 가령, 종업원에게 '안녕히 계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말을 건네는 모습이라던지, 뒤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잠시 잡아준다던지 그런 모습에도.


그러고도 금세 '역시 사람이란 것들이 그럼 그렇지'라는 마음으로 돌아오고만 만다는 게 슬프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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