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조만간 내리지 않을까 싶은, 그저 뱉어내는 글.
뒷골이 땅긴다. 뭔가 잘못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사라지질 않는다. 마치 집에 물건을 두고 나왔을 때 들던 그 기시감. 그것과 비슷한 것이 더욱 예리하게, 서늘하게, 그리고 훨씬 큰 존재감으로 느껴진다. 그래 요즘 기억력부터 너무 안 좋아졌다. 평소에도 물건을 두고 나오는 일 정도는 있었지만 요즘처럼 지갑을 흘리거나, 블루투스 이어폰을 계속해서 잃어버린다거나, 타인의 말을 새까맣게 잊어버린다거나 하는 일은 잘 없었는데. 단순히 피로해서 일시적으로 기억력이 떨어졌겠거니, 곧 다시 돌아오겠거니 생각하고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 해야만 하는 것들을 메모하는 습관을 들인 지 몇 달이나 됐는데 다시 회복되긴커녕 더 안 좋아지는 것 같다. 스트레스 때문인가. 근데 고작 이 정도 스트레스에 무너져선 안되는데. 지금은 계속 나아가야만 할 때인데. 멈춰 서서 숨 돌리고 있을 틈이 없는데.
생각해 보면 맘 편히 쉰 적이 까마득하게 예전인 것 같긴 하다. 쉬는 것 같아도 금세 일생각이 머리를 채우고 늪에 잠기는 듯한 답답함이 숨통을 옥죈다. 한 번씩 찾아오던 왼쪽 가슴 부근의 격통도 조금 잦아진 것 같다. 아닌가. 그냥 예민해져서 그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어차피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고, 반복만 하면 되는데 계속 그걸로는 모자라다는 압박감이 든다. 더 새로운 것들을, 더 열심히, 더 많이. 지금의 페이스보다 더욱 빠르게 달려야만 할 것만 같다는 감각. 마라톤처럼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 날 제치고 저 멀리 나아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도 아닌데 내가 뒤쳐지는 듯한. 이래서는 안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이전처럼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만 그런 거겠지' 하는 생각으로 불안감을 떨쳐내려 해도 머리카락에 붙은 껌딱지처럼 도통 떨쳐지지 않는다. 지금 내가 감당하고 있는 것들이, 내가 이미 벌려놓은 것들이 있는데. 고작 지금 이 정도로 있으면 안 되는데.
원인을 찾을 수 짚어보자. 최근의 큰 변화라고 하면 함께 할 팀을 만든 것 정도다. 주변 지인들을 모아다가 내가 하는 일에 끌어들여 앞으로도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르쳐주고, 일을 분담하고,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아니,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이 사람들이 계속 내 곁에서 함께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거기서 부담감을 느끼는 건가. 타인을 책임진다는 것. 당장 나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걷잡을 수 없는데 섣불리 더 많은 것을 짊어지려 해서 견디지 못하는 건가.
예상은 달랐다. 혼자 있기에 불안한 줄 알았다. 그래서 함께 나아갈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그래서 그런가. 적당히 좋은 관계로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것을 오히려 부숴버릴 수 있는 위험한 테이블 위에 올려둔 것일까. 오히려 적당한 책임감과 압박감이 생기면 더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실 내가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뭐 계속 혼자였더라도 불안감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종류가 달랐으려나. 모르겠다. 그런 다른 상황까지 생각할 여력이 닿질 않는다.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인걸. 그냥 여태 하던 것처럼, 조금 불안해 보여도 참고 나아가면 금방 익숙해지지 않을까. 몇 년 동안 계속 이어진 불안이지만 지금 있는 곳이 그 불안의 끝자락일지도 모르니까. 조금만 더 나아가면 이렇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모두 가능성의 영역이다. 확실하지 않다. 여태 버텨 온 기간보다 아득히 먼 기간을 버텨야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을 거야' 하는 희망고문을 스스로에게 가하며 계속 나아가는 수밖에 없겠지. 어쩌겠어 어차피 여기서 버텨내고, 나아가는 길이 아니면 다른 선택지도 없는데. 나한텐 지금 이게 전부를 던져놓은 건데.
그런데 만일, 진짜 만일 순간의 충동을 버텨내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어떤 생각을 하던 실제 상황만큼 생생하진 못하겠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이렇게 토악질을 하고 있을 시간에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지. 늘 그랬잖아. 걱정은 해봐야 아무런 쓸모도, 효과도 없는걸. 하던 대로. 하던 대로만 하면 돼. 늘 그렇듯이 당장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그러면 되는 거야. 어차피 다른 선택지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