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복용 중이던 약이 다 떨어져 다시 병원을 찾았다. 늘 그렇듯 대기 중인 사람들을 보자마자 또 한 시간가량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몇 번 겪어봐서 익숙한 움직임으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적고, 적당히 구석진 자리에 앉아 가방 안에 넣어 다니는 책을 펼쳐 읽는다. 정신과의 공기는 늘 묘하다. 타인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상태에 깊이 고민하는 사람,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일로 찾아왔을까 궁금해하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연신 주변을 힐끗거리는 사람 등등. 밖에서는 평범한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곳에서는 자신이 평범하지 않은 듯이 앉아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 진료실을 들어가면 이젠 익숙해져 가는 의사 선생님과 넓은 책상, 그리고 내가 앉을 의자가 보인다.
의자에 앉고 나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듯이, 아니 친척이 조금 더 비슷할 것 같다. 선생님의 주도로 최근 근황을 이야기하고, 잠은 잘 잤는지, 일상생활은 어땠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야깃거리가 말라간다 싶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수면이 불안정해졌고, 일상생활에서는 간혹 무기력함이 덮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누워만 있는 시간이 길어졌으며, 불안감을 줄이고자 한 노력이 부담감으로만 바뀌어 여전히 나를 짓누르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 내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그제야 선생님의 손이 분주해진다. 매번 볼 때마다 도통 뭘 적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내 상태를 기록하고, 생각한다는 것이니 뭐든 좋은 거겠지 싶다.
병원을 나서면 저번에 받은 약과 같은 약들이 담긴 봉투를 들고 나오게 된다. 처음에는 분홍색 항우울제 하나로 시작해서, 그 다음번에는 안정제가, 그리고 최근에는 수면제가 추가되었고 그 뒤로는 변화가 없다. 고작 이거를 받으려고 몇 시간을 기다리고 한참 동안 '가야지.. 가야 하는데...' 생각을 거듭하며 귀찮음에 뒹굴었다는 게 허무하게 느껴지지만 조그마한 봉투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을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돌아선다.
항우울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우울증을 완화시켜 주고, 안정제는 공황장애 진정, 불안감 완화 등의 작용이 있다는데 실질적인 효과는 모르겠지만 먹고 나면 한결 나아졌다는 기분이 든다. 약을 먹기 이전에는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에도 불안감에 계속해서 정신력이 깎여나가고, 밤에 몸을 뉘이면 어차피 살아봐야 이런 고통에서,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데 왜 삶을 이어갈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해가 뜰 때까지 뒤척인다. 그래도 약을 먹고 나면 좀 낫다. 불안감은 사라지고 그저 목표를 위해 달리기나 하자는 담백한 마음가짐으로 바뀌고, '왜 살지' 하는 생각은 '살아있는 김에 사는 거지 뭐, 살다 보면 또 뭐라도 재밌거나, 행복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변한다.
흔히 내 주변 남자들이 병원을 죽기 직전이 되고 나서야 부활하러 가는 포인트 존처럼 여기듯이 나도 일상생활이 조금 불편할 정도였으면 아마 진료를 보러 가지 못했을 것이다. 진료를 보기 전엔 상태가 정말 심각했다. 평소였으면 하루이틀 지나면 사라질 자살충동이 일주일 너머 이어져 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엿같은 현실을 내팽개치고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고, 불안감 탓에 하루에도 8미리짜리 담배를 반감에서 한 갑까지도 태우며 머릿속을 훈연하며 익혀나가고 있었다(담배는 말보로 레드를 피는데, 요새는 하루에 2~3개비를 피지만 여전히 끊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흡연이 취미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자세한 건 다음에 따로 글을 써보겠다). 나사 빠진 상태가 한참을 이어가다가 잠시 정신을 차리면 '이렇게 살다간 정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리겠는데' 싶은 생각이 몇 번 반복되고 나서야 가까운 정신과를 찾고, 방문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런 삶이 익숙해졌다. 잠은 어찌 됐건 여느 알약보다 작은 약 한 알이면 한 시간 안에 뇌를 강제 종료시켜 버렸고, 우울증은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 정도로, 불안장애는 계속해서 노력할 수 있도록 하는, 삶에게서 발버둥 치게 만드는 감시자로 자리 잡았다. 이쯤 되면 나한테 자아분열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간혹 들기도 한다. 쓸데없는 위로와 동정 따윈 와닿지도 않고, 실질적인 도움도 되지 않으니 마냥 밝은 모습만,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20대 대학생의 모습만 보여주려는 내가 우울감에 잠겨 퍼져있는 나와 불안감에 항상 손가락을 물어뜯으며 떨고 있는 나를 돌보며 어떻게는 살아가는 모습으로. 우울과 불안이 없었다면 한결 살기 편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있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그런 삶은 또 원하지 않는 나를 찾게 된다. 어찌 되었건 우울감 덕분에 삶에서 악착같이 의미를 찾아내려, 가치를 만들어내려 노력하게 되었고 불안감 덕분에 내가 멈춰있지 않도록 계속해서 채찍질하여 옛날의 냄새나는 방구석 히키코모리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고 노력을 통해 만들어낸 지금의 모습을 지키려, 그리고 스스로 만족하고 다른 이들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더 갈아 넣을 수 있게 되었으니.
아픈 손가락 같은 녀석들이지만, 어쨌건 그 모습들도 나의 일부분이고, 그 모습들 덕분에 지금의 나라도 있을 수 있었으니 도려낼 생각은 없다. 단지 그런 나의 모습들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또 다른 나의 면들을 건실하게 키워내야겠다는 생각이 맴돌 뿐이다. 나는 아직 타인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를 책임질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으니.
내가, 나를 위해 살아갈 뿐이다.
의미는 '살다 보면 찾아지겠지' 하는 낙관적인 희망과 함께.
그리고 그 낙관은 가만히 있는다고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직접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