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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월 Aug 19. 2023

불면증 환자의 운 좋은 숙면

 감각이 쓸데없을 정도로 예민하다. 옛날에는 어디 있는지 모를 핸드폰을 진동 소리로 늘 잘 찾아낸다 싶을 정도로만 청각이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자취생활을 하다 보니 고작 그 정도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원룸에 살다 보니 침대에서 세 걸음이면 닿을 냉장고에서 주기적으로 냉각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케이블 분리형 충전기에서 들리는 상당히 높은 주파수의 전류 흐르는 소리가 고막을 찌른다. 덕분에 집에서 사용하는 충전기는 모두 일체형으로 바꿔버렸고 침대에서 먼 곳에다가 놓았으며, 냉장고 소리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으니 충분히 냉각이 되어 냉각기가 멈췄을 때에 빠르게 잠에 들려고 한다. 그래도 불면증 탓에 곧장 잠에 들긴 어려우니 혹여나 냉각기가 돌아가더라도 그 소리를 어느 정도 덮어줄 수 있는 수면 음악을 핸드폰으로 틀어두고, 머리맡에 둔다. 잠을 잘 땐 몸이 살짝 눌리는 무게감이 편안하다고 느껴져 이불은 사계절 내내 도톰한 이불을 사용한다. 여름마다 특히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지만 밤새 에어컨을 틀고라도 꼭 두꺼운 이불을 덮는다. 아, 에어컨이 웅웅 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도 꽤나 거슬리기에 온도는 26도로 맞춰놓고 바람 세기는 가장 약하게로 설정한다. 어차피 침대 바로 위에 에어컨이 달려있으니 바람 세기가 약해도 바로 시원한 바람이 피부에 닿아 잠을 잘 수 있는 정도로는 식혀준다.


 어차피 알람을 끄고 다시 자긴 하지만 그래도 오전에 알람 설정을 해놓고, 태블릿도 충전기에 꽂아두면 잘 준비는 다 했다. 청소나 정리 같은 신경 쓰이는 일들도 모두 해치워놓았으니 드디어 맘 편히 침대로 들어갈 수 있다. 내 침대는 더블사이즈인데, 왠지 베개를 베고 누우면 발 끝이 매트리스 끝에 걸쳐있어 항상 매트리스의 대각선으로 누워서 잔다. 그렇지 않으면 발이 떠 있는 느낌이 불편해 잠을 못 자거나, 몸을 좀 더 높이 뉘이면 10분에 한 번 꼴로 베개가 떨어지기에 그걸 줍느라 잠이 다 깨버린다. 이불을 명치보다 조금 높은 위치까지 덮고, 팔은 이불 밖으로 꺼내 편하게 밑으로 내린다. 어느 정도 편한 자세가 되면 이제 머릿속을 정돈할 차례다.


 처음에는 내가 죽어서 관짝에 들어갈 때를 떠올리며 관짝 속의 어두컴컴함과 흙과 나무 냄새를 떠올리며 15분가량 누워있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나고 잠에 드는 일만이 가능하며, 남아있다는 생각에 1차적으로 정리가 된다. 이 단계에서 잠이 들면 정말 좋겠지만 술을 진탕 먹은 날이 아니고선 수면유도제를 먹더라도 겨우 이 정도론 잠에 들 수 없다. 이후엔 조금 뒤척거리다가 새로운 풍경을 떠올린다. 시작하는 풍경은 늘 똑같다. 아무도 없는 호숫가, 호숫가 주변으론 나무들이 울창하게 둘러져 있어 더더욱 나 자신밖에 없다는 안정감을 준다. 나는 그곳에서 호수를 등지고, 수면 위로 몸을 뉘인다. 때로는 시원하고, 때론 체온보다도 높은 수온이 몸을 감싸고 내 시야에는 일렁이는 물 표면과 수면 위의 태양만이 흐릿하게 보인다. 몸은 해파리처럼 힘이 빠진 채, 중력만이 간섭해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간다. 어차피 상상 속의 공간이니 호흡이 가빠진다거나 수압이 버겁다는 등의 느낌은 없다. 단지 무중력과 같은 물속이 주는 안정감과 끝없는 깊이의 밑바닥을 향해 홀로 계속해서 가라앉아 간다는 느낌이 형용할 수 없는 편안함을 준다. 호수의 물 표면과 태양마저 보이지 않을 때쯤이면 온 사방이 어두컴컴한 심해와 같은 곳으로 바뀐다. 그곳에선 위도, 아래도, 벽도 없어 진짜 호수가 맞는지 의문이 드는 공간이다.


감각에 느껴지는 어떤 자극도 없고 다른 누군가도 없는 오직 홀로, 내 안의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 그곳에 들어서면 속에 박혀있던 단어들이 하나둘씩 기어 나온다. 속에 박혀있을 땐 어떤 일을 하던 불편함이 느껴졌지만 속으로 기어 나온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하찮은 것들이다. 이때 그 키워드들이 뭔지, 어떻게 해소할지를 생각하게 되면 글감이 떠오르고 불면증이 더욱 길어진다. 재수 없으면 몽롱하던 몸을 이끌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흐리멍텅한 글들을 적어 나르고 있게 된다. 어떤 키워드던 깡그리 무시하고 몸에서 재수 없는 걱정거리들이 빠져나가는 감각에만 집중한다. 그것들은 마치 노폐물 같아서, 더 빠져나갈수록 나는 내 심장 박동과 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류만이 느껴진다. 가끔 소화가 덜 된 음식물이 배에서 꾸르륵거리는 것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빛과 어둠의 경계도, 시끄러운 잡음도, 머리 아프게 하는 주변 관계들도. 세계와도 독립되어 버린 정신적인 공간에 오로지 나만이 존재한다. 그곳에서 내 정신과 육체를 느끼고, 감지하다 보면 마치 명상을 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렇게 내게 집중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틀어놓았던 수면 음악도 희미하게 들리고 잡다한 걱정거리, 스트레스, 노폐물이 빠져나가고 남아있던 몸뚱이까지도 물에 조금씩 녹아 흩어진다. 내가 나에 대해서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녹아 흩어지고 나면, 다시 현실 시간으로 2~3시간가량이 흐르고 나면 그제야 잠에 든다.


오전에 무슨 일정이 있던 어떤 알람도 무시하고 반드시 8시간은 자고 일어나게 되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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