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500만 원만 빌려줄 수 있을까."
어른들은 흔히 이야기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돈을 빌려주는 일은 피하라고.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조금만 커도 금방 알 수 있었다.
건너 건너 들려오는 흔한 현실의 이야기들. 돈을 빌려준 친척이 잠적을 했다거나, 친구의 빚보증을 서주었다가 집의 대문부터 내부까지 온통 새빨간 딱지로 도배되어 버렸다던가 등등.
그렇게 말을 하는 어른들조차 그걸 어겼다가 삶을 말아먹어버리는 이야기들이 흔치 않게 들려온다.
그 이후에 들려온 소식은 대부분 무소식이거나, 그렇게 떠넘겨진 짐을 대신 지고 힘겹게 살아간다거나,
아니면 떠넘겨진 짐과 함께 분신을 해버렸다는 등의 비극적인 소식이다. 그땐 '본인도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저러는 어른들은 멍청한 사람들인가?' 싶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멍청이였다.
"언제까지 갚을 수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던 코흘리개 시절부터 온갖 일들을 함께 겪으며 지낸 고향 친구.
사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존재.
그런 존재가 자신의 자존심을, 친구에게 자신의 짐을 함께 지어 달라고 부탁하는 그 말의 무게를 알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려 있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나라면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의 상황과 절박함을 이해하고 물렁해빠진 것들처럼 빌릴 때와 갚을 때의 모습이 다르지 않으리라 믿어 줄 거라고.
정말 하나하나 풀어내기도 어려운 의미들을 모으고 모아 저 짧은 의문문에 담아서 조심스레 꺼내는데, 어찌 곧바로 내치겠는가.
"최대한 빨리 갚을게. 당분간은 죽었다 생각하고 돈만 벌 거야."
어릴 적엔 모두 어른이 되고 나면 다들 번듯하고 안정적으로 살며 함께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꿈이었다.
한 번에 120~200개가량의 알을 낳는 바다거북도 무사히 부화해 바다로 돌아갈 가능성조차 30%가 채 안되는데, 사람이라고 뭐가 다를까.
그리고 당장은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입장인 나도, 언제 무슨 일이 닥쳐서. 혹은 지금의 일들이 어떻게 뒤집혀버려서 나도 똑같이 친구들에게, 혹은 가족에게 손을 벌려 도움을 구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기 이전에 혀를 깨물어버릴 것 같지만.
"계좌번호로 보냈어. 매달 이자 얼마인지는 알려줄 테니까 그거부터 보내고 원금은 편하게 줘."
"진짜 고마워... 이번 일은 절대 잊지 않을게. 그리고 열심히 갚을게."
"헛소리마. 원금 다 갚으면 없던 일로 해. 돈도 돈이지만 차용증에 적어놓은 대로 밥도 잘 챙겨 먹고.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일 키우지 말고 연락하고."
"그래. 진짜 고맙다."
가족이나 연인한테 말하면 무슨 짓을 했냐는 소리라도 들으려나. 아마 나 같아도 친구한테 대뜸 500만 원을 빌려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이야기하겠지.
평소에는 돈이 얽힌 일은 만들지 않고자 했는데. 관계에 돈이 엮이는 순간부터는, 먼지가 쌓이고 거기에 불이 붙기도 너무도 쉬워지니까.
그리고 그 엮이는 돈이 클수록 더욱. 한편으론 고작 몇백만 원에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게 한탄스럽기도 하다. 터를 잡고 지낼 집들도 아무리 작아봐야 수천 수억 원에, 한 달 생활비로도 수백만 원은 금세 나가버리게 되는데.
취직을 하지 못해 완전히 어른이 된 것도 아니고, 나이는 먹었다고 성인이라고 취급받는 이 어중간한 인간들이 받는 고통은 어찌 이렇게 적당할 수 없을까.
그냥, 돈이 전부인 세상에서 돈에 항상 발이 묶여 허둥대는 게 더럽고 서러워서, 이 늪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대체 이놈의 마이너스 숫자는 언제 사라지려나.'
어찌 되었건, 예상치 못한 구멍을 메우려면, 다음 달 전세 이자를 내려면, 관리비와 전기세, 가스비를 내려면, 벌써 비어버린 즉석밥 주문을 하려면, 텅 비어버린 캡슐 커피를 사다가 채워놓으려면, 이번에 봐둔 주식을 하나라도 사두려면, 다시 돈이 급해진다.
수면제를 챙겨 먹고 곧바로 이부자리로 향한다.
먹다 보니 점점 약효가 빨리 오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때를 놓치면 약을 먹고도 잠에 들지 못하니.
그렇게 누워서, 내일 작업할 거리를 한두 개 더 추가할 생각을 하며 냉기가 감도는 침대에서 이불 두 겹을 꼭 끌어안고 잠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