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월 Nov 14. 2023

거짓말쟁이의 고백

단편소설

안녕하세요. 백동하입니다.


 이 편지는 제 곁에 있는 소중한 분들 모두에게 전해질 글이에요. 따라서 호칭은 '당신'으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평소엔 편지는커녕 문자도 잘 보내지 않던 제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제 삶을 되돌아보며 제 곁에 있어 주는 당신에 대한 마음을 전할 필요가 있다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부디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시고, 저에 대한 기억의 일부로 남아주면 좋겠어요.


 아마 당신은 제가 허언증에 가까운 거짓말쟁이라는 걸 이미 알고 계실 거예요. 그리고 그런 가면 뒤에 숨겨진 모습들도 알아채고, 거짓말을 자꾸 하는 제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해 주시고 계시겠죠.


 하지만 제 모순적인 모습들과 이질적인 면들을 보면서도 그 속의 나약하고 불안한 제 모습을 동정해서, 혹은 그조차 사랑해 주어서 제 곁에서 관심 어린 행동과 생각들을 건네주시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요.


 여러분께는 별일 아니더라도 정말 제겐 몸서리쳐질 정도로 과분한 일입니다. 그런 모습들 덕분에 삶의 의지를 이어갈 수 있었던 순간들도 있으니만큼요.


 저는 단지 제 외모, 성격, 능력 모두 하나같이 나약하고 유약한 모습이 부끄러워서, 제가 되고 싶은 이상적인 모습까지의 거리가 너무나도, 아득하게 느껴져서 그 깊은 괴리감을 피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래서 자신감 넘치고, 여유 있으며,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며 포용력 있는 모습들을 연기했죠.


 간혹, 어느 순간들에는 그런 제 모습이 진짜라고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내가 바라던 모습에 정말로 가까워지는구나.' 싶은 생각들이 들었죠.


 어림도 없었어요.


 썩어빠진 제 본성은 그대로인데 겉껍데기만 아무리 바꿔봐야 껍데기 속에서 더 깊이 썩어 들어가며 차오르는 고름이, 결국 겉껍데기 밖으로도  새어 나올 뿐인데 말이죠. 계란이 썩을 때 나는 그것과 비슷한 지독한 악취와 함께.


 매일 밤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마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며 저를 괴롭혔어요. 끔찍했죠. 외면하고 싶었던 사실이 눈앞도 아니고 머릿속에서 징징 울려대니 두통은 당연하고 잠도 당연히 제대로 못 잤어요.


 하루 3~4시간도 겨우 자고 다음 날 멀쩡한 척, 푹 자고 또다시 맞이한 활기찬 하루를 즐기는 사람을 연기하는 것이 반복되었죠.


 그러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줄이 끊어지듯이, 가면 쓰고 살아가는 삶을 때려치워 버렸어요. 더 이상 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까요?


 아마 당신이 기억하는 그즈음일 거예요. 제가 갑자기 모든 연락을 끊어버리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된 날. 그때의 저는 처참하다 못해 참담했어요.


 곪아 차던 고름이, 가끔 새어 나오기만 하던 악취가 결국 껍데기를 완전히 부숴버리고 사방팔방으로 터져 나와 버린 거였죠. 그런 더럽고 혐오스러운 자신을 숨길 수 없게 되자 제 판단은 '이런 꼴을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어선 안 된다.' 였어요.


 그렇게 죽어 잊힌 사람 같은 을 이어갔죠.


 어찌 보면 정말 그날로 사람들이 알던 '백동하'는 죽은 게 맞을지도 몰라요. 그날 이후로 보게 된 사람은 행동도, 표정도, 성격도, 눈빛조차도 밝게 빛나던 그 사람의 어떤 부분도 찾을 수 없게 되었으니 죽었다고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을 거예요.


 당시에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끔찍하게 괴로웠지만 글을 쓰는 이 시점에서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덕분에 가짜의 모습을 버리고 제 진짜 모습만을 대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 차이는 분명했어요.


 가짜의 모습이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고 잘 된들, 그것은 결국 배역, 캐릭터의 성장에 불과할 뿐 제 성장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경험들이, 생각들이 온전히 저의 것이 되었으니까요.


 그렇게 모두 내던져 버린 이후 방황하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어요. 성실하게 일하는 노동자의 땀방울, 타인을 위해 거리낌 없이 건네는 선의, 인간과 인간 사이의 배려와 굳은 신뢰를 바탕으로 맺어진 연대 등.. 저 자신에게선 도통 볼 수 없던 모습들이었죠. 그런 것들을 보다 보니 다시 한번 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자신이 생겼어요.


 그래서 이젠 그 목표를 위해 제 모든 것들을 쏟아부어 보려고요. 아마 그러는 동안에도 다시 저와 연락이 닿지 못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꼭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을 테니 언젠가 또다시 만나 즐거웠던 이야기들을 풀 수 있길 약속할게요.


읽어주셔서, 편지를 전해주셔서 고마워요.


20XX 년 11월 XX일

당신을 소중히 생각하는 백동하 지음.




20XX 년 11월 XX일, 백 모 씨는 차디찬 원룸에 유일하게 온기가 느껴지는 화장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시신은 오랜 시간 습한 환경에서 방치되어 부패가 꽤 지난 것으로 보였으확인된 사망 원인은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사로, 스스로 자기 손목에 있는 정맥을 끊고 세면대의 흐르는 온수에 이를 담가 출혈이 지속되도록 하여 자살에 이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첫 발견자는 같은 건물에 거주 중인, 당시 그가 거주하는 집의 임대인으로 임차인 백 모 씨가 당 분의 관리비를 지급하지 않고, 연락이 오랜 기간 끊겨 마스터키로 문을 열고 들어와 이 상황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당시 문이 잠겨있었고 외부에서의 침입 흔적 또한 없었으며, 주변인 조사에서도 그에 대한 악의를 품은 이는커녕 대부분 그의 부재가 3년 이상 이어졌기에 교류가 끊어져 '백 모 씨'에 대한 근황 이야기가 전무다.


 다만 그의 방에서 발견된, 유서로 보이는 편지와 병원 진료 기록들을 통해 알아본 바로 그는 지독한 불안장애와 우울증, 강박증, 경계성 인격장애 앓고 있었으며 이러한 정신 질환이 심화되어 이와 같은 참상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사은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는 청년층의 우울감으로 인한 고독사와 유사한….

매거진의 이전글 새벽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