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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월 Aug 24. 2024

몽중몽(夢中夢)

나는 어디로

 길을 잃었을 때의 기분을 아는가?

 시간에 쫓겨 조급함은 극에 달하지만 나는 어디에 있는지, 목적지는 어디에 있는지 몰라 머릿속이 말 그대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리는 때. 나는 매일 그 상황 속에 떨어져 있다. 아니, 이건 통상적인 길을 잃는 것보다 더욱 지독한 것이다. 목적지까지 어떻게 가는 일 정돈 핸드폰의 지도 정도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애초에 목적지가 존재할 수 없는 삶에서, 말 그대로 '길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이미 잃은 것과 똑같은 걸 되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만화를 좋아했다. 여러 장르 중에서도 특히 밑바닥에서 출발하는 소년만화들. 만화의 주인공들은 아무도 할 수 없을 거로 생각하는 목표를 당당히 내걸고, 삶의 모든 부분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기꺼이 바친다. 때론 고난을 겪고, 자신이 잘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혼란도 찾아오지만, 그들은 처음에 정한 길에서 결코 벗어나는 일 없이 흔들리지 않고 빛나는 존재가 된다.


 나는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결국 인간이 만든 창작물은 인간이 경험한 세상을 양분으로 만들어지니까. 그리고 그 창작물들이 보여주는 세상은 여지없이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삶을 위해 나아가는 삶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나 또한 내 이상만을 바라보고 나아가다 보면 모든 것이 잘될 것으로 생각했다. 끊임없이 나아가며 동시에 커가는 그 존재의 인력에, 다른 자잘한 이상들 또한 함께 끌려오리라 생각했다. 이야기들은 늘 그랬으니까. 하지만 나는 진작 깨달아야 했다. 가장 큰 이상만을 쫓아도 다른 이상들이 자연스레 함께 딸려 와 오직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에. 사람들에게 그리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는 것을.


 현실은 오직 선택과 상실이다. 한 가지를 선택한다고 해서 그것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선택되지 않은 다른 것들은 모조리 버려진다. 언젠가 같은 선택지가 찾아와 미래엔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또한 가능성의 영역이다. 확실한 건, 삶의 일부분이 될 수 있었지만 내가 고르지 않은 것은 얻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큰 희생을 치러냈음에도 선택을 한 것조차도 제대로 얻지 못할 수 있다. 게임이나 만화처럼 노력만 하면 반드시 보상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조차도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이상이니까.


그런 장담할 수 없는 가능성의 영역이더라도 인디언식 기우제처럼 계속해서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다 보면 언젠간 얻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계약 조건임에도 얻어냈을 때의 만족에 대한 기대감에 '나라면 반드시 얻어낼 것이고, 그때가 남들보다도 조금 더 빠르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오만이 더해져 선택을 이끈다.


 감정에 취해있던 나는 환상 속에 잠들어 행복한 꿈을 꾸다가 방금 막 깨어났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해온 걸까.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선택을 내렸던 것인가. 어째서 나는, 나를 그렇게까지 믿었을까. 지금은 비록 누구도 가본 적 없는 황무지를 개척하고 그 끝엔 누구도 찾지 못한 보물이 있을 거로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내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이 척박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꽉 차 바깥까지 흘러나온다.


나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내가 선택할 때 보았던 것은 뭐였을까.

확신이 가득하던 때와 달리 이렇게 고민하는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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