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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월 Jun 20. 2024

아토피

단편 소설

왼쪽 팔뚝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깜짝 놀라진 않는다. 무덤덤하게 고개를 돌려서 보면 피부엔 소매 끝자락 아래 어디에도 작고 새까만 것의 광택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팔뚝에 없다는 걸 제 눈으로 보고 난 후에도, 무언가가 기어 다니는 듯한 간지러운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사라지지 않는 불쾌한 기분엔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오른손을 들어 올려 손톱으로 보이지 않는 벌레를 찢어발기듯, 피부를 몇 번 벅벅 긁어대면 그 감각은 때론 붉은 핏방울이 맺히기도 하며 바알갛게 변하는 살갗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느낌과 함께 사라진다.


이렇게 팔처럼 손이 닿기 쉽고, 드러난 부위면 그나마 걱정은 없다. 살점이 떨어져 손톱에까지 피로 물들지 않도록, 힘조절을 해서 긁으면 되니까. 진짜 난감한 경우는 몸통과 등, 그리고 살이 접히는 사타구니 부분이 간지러운 경우다. 아무리 유연하다 하더라도 등은 손이 잘 닿지 않아 낑낑대며 긁는 모습이 광대마냥 우스꽝스럽고, 몸통과 사타구니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긁자니 마치 사람들의 눈길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 동물원 철창 속의 유인원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결국은 기분과 느낌이다. 타인이 불결하게 바라보고 피하는 듯한 기분. 제 몸을 긁겠다고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민망한 부위까지도 벅벅 긁으며 광대 혹은 원숭이가 되는 듯한 느낌. 그렇게 손톱이 제 몸을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남긴 붉은 흉과 핏방울이 번진 상처는 전염병 환자처럼 다른 이들에게 옮기지 않기 위해, 그리고 불쾌함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숨겨야 한다는 부끄러움과 수치심. 이를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온갖 벌레가 몸을 기어 다니고 물어뜯는 감각을 참아내야 한다는 강박.


그렇게 며칠도, 몇 달도, 몇 년도 아니라 수년간 남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벌레들을 손톱으로 찢으며 지내온 몸은 늘상 곳곳에 피딱지가 채 앉지도 못한 붉은 점들이 팔에, 손에, 다리에, 등에, 목과 얼굴에까지 맺혀 있다. 자다가도 제 몸을 긁고, 긁다가 아파서 깨고.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와도 계속해서 더 깊이, 더 크게 긁어대고. 도저히 아파서, 혹은 핏자국이 이불에 베여들기 시작하면 아예 몸통과 팔을 붕대로 칭칭 감기고, 손에는 장갑이 끼워진다. 제 팔도 편히 굽히지 못하는 갑갑함은 마치 산 채로 미라가 된 듯한. 어딘가 심하게 망가져버린 듯한. 붕대 밑의 피부가 아무리 가려워 가죽을 뜯어내고 싶어도 그리하지 못하도록 몸을 칭칭 감아놓은 천조각들이 지독하게도 원망스러운.


제 몸을 벅벅 긁어대는 모습과 몸의 상처를 어떻게든 숨기려 한들, 제 몸에 새겨진 더러운 얼룩은 옷깃 위로, 소매 아래로, 수저를 잡는 손가락과 손가락 마디, 손가락 틈새, 손 등과 손목 모든 곳에 드러나 제 존재를 피력한다. 채 숨지기 못한 수치를 본 이들은 얼핏 들어본 아토피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로 괴로움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듯 동정심을 보이기도 하고, 자신이 뭘 좀 안다 싶은 사람들은 "제대로 되지도 않은 것들이나 주워 먹으니 그렇지"라는 말을 내뱉는다. 저들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으면서. 자신에겐 이런 고통이 따르지 않으니 밀가루와 기름진 음식, 육류 등이 주는 식사의 행복을 제 스스로 금하는 일은 제대로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가볍게 던져지는 말과 시선, 감정들이 셀 수 있을 정도일 땐 얼마든지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 있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하겠습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이런 적당한 말과 적당한 미소로 무던히 넘길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수개월, 수년, 수 십 년 쌓이면 견디기 어려워진다. 툭 툭 날아드는 말들이 피부 밑을 기는 벌레보다도, 제 손에 뜯긴 상처가 벌어질 때의 아픔보다도 더 고통스럽다.


아토피가 내 피부와 몸을 파먹고 있으면, 같잖은 조언과 동정은 내 정신을 파먹고 들어간다. 그리고 그런 고통 속에서 가장 처량한 감정을 새겨 넣는 것은, 그런 잔소리들을 쉼 없이 듣고 있는 순간마저도 식탁 밑에서 저도 모르게 왼손의 손등이 가려워 손톱으로 꼬집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그렇게, 20년을 살았다. 그렇게 간신히, 20년이나 버텼다.


가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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