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짢거나 거부반응이
모든 것의 궁극의 본질과 마찬가지로 감정의 본질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인간과 만물의 모든 것은 인간이 그 본질을 알 수 없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죠.
감정은 생각과 더불어 인간 영혼의 한 요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간은 여러 가지 이유로 언짢거나 불쾌한 감정이 생기죠. 그리고 그 감정은 정당하거나 부당하거나이죠.
자존심이 상해서 불쾌하게 느끼는 것은 후자에 속하는 것이죠. 자신이 지닌 특정 부면에 대해 실제 이상으로 가치가 높다고 평가한 것에 대해 공격받았다고 느끼는 경우이죠. 에고가 직격탄을 맞았다고도 하는 것이죠.
자존심이나 에고는 교만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죠. 과도한 자기애이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지니고 있는 가치관이 공격받았을 때 생기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도덕에 대해서는 임의적 가치관 그리고 존재의 근원이나 현상에 대해서는 진화론적 유물론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죠. 사회가 대부분 그런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간에 그런 면으로 공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러나 그런 것들은 법칙을 거스른 것이죠. 물론 이점을 인정하지 않죠. 그렇지만 그들에게 동료인간에 대한 의무와 도리로 일종의 소식으로 전해지게 되죠. 왜냐하면 창조의 근원으로부터 유래한 진리를 알게 되는 경우 그것을 동료인간에게 전하는 것인 인간 본연의 의무이기 때문이죠. 그들이 기존의 가치관을 고수하고 그대로 생활한다면 멸망에 이르는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식은 주장되는 것이 아니라 증거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살펴보기만 하면 확인되고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생명을 누릴 수 있죠. 한편으로는 소식이 그렇게 전해지는 것은 공의의 법칙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반복적으로 확고히 거절해서 그들에게 임하게 되는 결과는 전적으로 그들의 책임이어서 우주의 모든 피조물 앞에 창조주의 사랑이나 공의가 조금이라도 비난받을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상대의 감정을 언짢게 할 것임을 뻔히 알아도 그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짢아서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는 정도가 아니라 조롱하고 비난하고 공격하기까지 하는 것이죠. 심지어 범죄자로 몰아 처벌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나 예수의 제자들의 경우 그렇게 되었고 진리를 순수하고 올바른 동기로 동료인간에게 전하는 모든 경우에 직면하게 되는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뭔가 메시지를 접했을 때 일단 언짢음을 느꼈을 때 그에 따라 거의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하게 된다면 유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전달하는 대부분의 내용도 그러한 것입니다. 개인적인 사상이 아니라 창조의 근원에서 나온 것을 전달하는 것이죠.
인간이 우연히 맹목적으로 생긴 존재가 아니라 피조물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 실제로 생존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