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까기에서 세 가지나

by 법칙전달자

알까기에서 세 가지나


손가락으로 장기알 같은 것을 튕길 때 손가락이 이동한 거리보다 장기알이 이동한 거리가 훨씬 크죠. 장기알이 이동한 것은 손가락에서 힘이 가해진 것이 원인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치 이동 즉 움직임의 원인은 힘이라고 잘못 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죠. 힘은 단지 가속도 즉 속도의 변화에만 상관이 있습니다. 장기알은 처음에는 정지하고 있었죠. 즉 속도가 0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손가락에서 힘이 가해진 순간 0이 아닌 속도가 생긴 것입니다. 없던 움직임이 생기게 된 것이죠. 힘은 순간적으로만 가해지는데 알은 그 순간뿐 아니라 계속 움직이죠. 그렇게 움직이는 이유는 일단 움직이게 되었기 때문에 관성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힘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힘이 가해지지 않아도 처음 생긴 속도에 따라 영원히 무한히 움직이는 것이 원칙이죠. 그런데 속도가 점점 줄어들다가 멈추게 되죠. 다시 속도가 원래의 0으로 되는 것입니다. 등속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속도의 변화가 있는 운동을 하는 것인데 속도의 변화가 있다는 것은 힘이 가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죠. 바닥의 마찰력이 이동방향과 반대방향으로 끊임없이 가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도가 줄다가 멈추는 것이죠.


힘은 단지 속도의 변화하고만 상관이 있는 것이죠. (1법칙) 이동은 전적으로 관성에 의한 것이고요. (2법칙)


그리고 손가락으로 알에 힘을 가했을 때 일방적으로 힘이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알에서도 손가락으로 가해지는 힘이 생기는 것이죠. 소위 반작용이라는 것입니다.(3법칙) 그러므로 손가락도 압력을 느끼는 것입니다.


한 가지 현상에서 이와 같은 세 가지 법칙을 발견하다니요. 정말로 경이롭습니다. 생각할수록 감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력의 발견도 그러합니다. 뉴턴 이전의 수백 억 명의 사람들은 같은 현상을 무수히 보고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죠.


뉴턴의 뇌에서는 어떻게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일까요? 어느 순간에 어떤 원리에 의해 그런 통찰력이 발휘가 된 것일까요? 참으로 부러운 능력입니다.


인간의 머리에 무슨 생각이 떠오른다는 것은 불확정성에 따라 무작위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전적으로 우연적인 것은 아닙니다.


뉴턴은 그 방면에 기초지식이 있었고 법칙을 알아내려는 의지가 강했으며 적극적으로 탐색과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그 방향으로 가 있었죠.


아인슈타인이나 다른 과학자들이 발견한 것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기울였죠.


그렇다고 해도 그 발견의 순간이 언제일지는 그들이 계획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발견을 하게 된데에 어떤 필연성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문명에 큰 유익을 주는 소위 위대한 발견을 하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바이죠. 꼭 과학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이 추구하는 영역에서 그러한 떠오름이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꾸준히 집요하게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죠. 두드려야 열리는 것입니다.(마태 7:7) 강청을 해야 얻어지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누가 11:8)


사랑도 죽음만큼이나 집요한 것이라고 하죠. (아가 8:6) 사랑이라는 것을 성취하는데도 그러한 특성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뇌에, 의식에 보배와 같은 뭔가가 생기게 된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학자인 경우 그런 한 번의 현상으로 노벨상을 받는 영예를 얻기도 하는 것이죠.


물론 학자들이 알아내기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것은 그것은 누구에게나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한 추구는 정당하고 권고할만하죠.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추구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원하고 의지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두고 추구한다고 다 얻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합당하고 창조의 법칙과 일치한 것이어야죠.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누구에게나 기꺼이 축하받을 만한 것이어야죠.


인간이 뭔가 추구한다는 것은 본성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이와 같이 합당한 것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때가 아니라 창조의 섭리와 일치한 때에 반드시 이루질 것으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한결같은 소망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계속 그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삶의 한 부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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