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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Apr 24. 2024

철학을 한다는 것은

철학을 한다는 것은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진리 추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100% 실패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죠. 종교를 택한다는 것도 그러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단정할 수 있습니까? 철학적인 생각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자가당착이죠. 

말씀 즉 진리에 그렇게 선언되어 있기 때문이죠. (골로새 2:8)


기독교 교리를 비롯하여 모든 종교교리도 철학에서 나왔죠. 하느님,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란 창조주의 말씀인 것은 창조주에 의해 선언되어 있는데 이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것이죠. (요한 17:17)


해석이 필요 없는 쉬운 말들을 해석하려 하는 것도 지극히 고의적인 반역적 시도이죠. 

'오직 하나'라는 말은 해석이 필요한 어려운 말이 아니죠. 그런데 삼위라고 하는 것이죠. "영혼은 죽는다"는 표현도 그렇죠. 그런데 플리톤의 이원론에 따라 영혼불멸 교리를 만들어 낸 것이죠. 


모든 철학과 교리는 인간이 밝혀 낸 법칙도 거스르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이 법칙들을 발견하기  전에 철학과 종교가 있었죠. 지금은 그런 것들이 거짓으로 증명되어 있죠. 


인간은 정신을 진리와 관련하여 사용할 때가 넘치므로 무익한 소모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성의 원래의 용도대로 사용하는 것이죠. 말씀을 알고 이해하여 지식으로 하고 이를 적용하는 것이죠. 인간이성의 용도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은 것이죠. (유다 10, 베후2:10)


철학하는 사람이나 종교인이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정치도 철학에 따라 하는 것이므로 역시 짐승입니다. 말과 행동도 실제로 그렇게 하죠. 


'목적'을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 결과라고 할 때 그들에게 임할 최종 결과는 멸망이므로 멸망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인이나 정치인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큰 범죄들을 저질러 왔죠. 그들에 대한 사형은 사법적으로 선고되어 있죠. 멸망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칸트는 이성과 오성(지성)을 뚜렷하게 구별하고 있죠. 논리나 심리, 언어 등의 인문학은 오성으로 하는 것이죠. 물리나 수학처럼요. 철학이 아닌 것입니다. 


지능학도 그렇습니다. 

잠언 2장 11절입니다. 

"사고력이 너를 지켜 주고 분별력이 너를 보호하여"


인간은 사고력과 분별력을 배우고 배양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은 철학이 아닙니다. 오히려 철학하는 사람은 그런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잠언 1장 2~4절입니다. 

이것은 지혜와 훈계를 얻기 위한 것, 지혜로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한 것,  통찰력과 의와 좋은 판단력과 올바름을 갖게 하는 훈계를 얻기 위한 것,  경험 없는 이들에게 슬기를 주고 젊은이에게 지식과 사고력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인간이 철학이 아니라 무엇에 정신을 쏟아야 하는 지를 알 수 있죠. 

현재는 그런 교육을 위한 공식적인 신권적 마련이 있으므로 비용 없이 활용할 수 있습니다. 

지적인 면으로도 순수사고력을 개발해 주는 마련이 있죠. 


정신, 지능은 주어진 것이죠. 그 근원에서 나오는 마련에 따라  사용해야 하죠. 철학적 사용은 이 법칙을 거스르는 것으로 필연적으로 파멸로 인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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