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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an 14. 2024

종교와 하느님

종교와 하느님


하느님, 창조주는 전혀 종교적 대상이 아닙니다. 그분에 대한 숭배는 종교적인 것도 아니고요. 성서는 종교적인 책이 아니며 예수는 종교적 인물이 아닙니다. 제가 전하는 메시지도 전혀 종교적인 것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는 창조주를 거슬러 존재하는 것이며 예수의 말씀대로 그들은 단지 불법을 행하는 즉 법을 거스르는 자들일 뿐입니다. (마태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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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한 사람을 세워놓고 사격해야만 할 경우,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미국 병사가 군목에게 물었다.


“곧바로 쏘시오. ·⁠·⁠· 하지만 생명이 귀중한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마시오”라고 그 교직자는 대답하였다.


전쟁에 가담하는 것과 양심상의 종교적 신념을 따르는 것은 언제나 양립될 수 없다. 그런데도, 나라들이 전쟁에 참여할 때, 종교는 종종 상기의 예가 나타내듯이 십자 포화에 가담하곤 한다. 「시애틀 타임즈」지는 그 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늘날의 종교는 세계를 괴롭히는 많은 분쟁을 진정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자극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에 우리는 북 에이레에서 가톨릭 교인들이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을 대항하는 것을 보아 왔다. 레바논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회교도들을 대항하며, ‘중동 지방’에서는 회교도들이 유대인들을 대항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힌두 교인들이 회교도들을 대항하며, 스리랑카에서는 불교도들이 힌두 교인들을 대항하고, 이란-이라크 전에서는 시아파 회교도들이 수니파 회교도들을 대항하고 있다. 이렇게 그 목록을 열거하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


그 모든 전투가 물론 종교적 차이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어떤 경우는 국경 분쟁이거나 또는 공민권을 위한 항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종종 그 배후의 요인이며 불길에 화약을 던지는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이란-이라크 국경 분쟁에 있어서, 이란의 시아파 회교 지도자들은 자기네 젊은 병사들에게 “알라 아크바르!” (“하나님은 위대하시다!”)라는 구호를 외치도록 촉구한다. 그 젊은이들은 전사를 하면 천당가는 길이 확실히 보장된다고 믿으면서 이라크의 수니파 회교도들을 대항하여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다.


이렇듯 종교는 십자 포화에 참여할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시다’라는 추론을 한다. 이리하여, 폭력과 파괴 행위와 살인을 계속 저지르며—그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한다. 더우기 종교가 배후 요인이 되면, 전투는 왕왕 더욱 처참해 지며 저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워싱턴 D. C에 있는 ‘윤리 및 공중 질서 연구소’ 소장인 어니스트 리피이버가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만일 하나님이 자기 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어떤 잔학 행위도 정당화 될 수 있다.”—「U.S. 뉴우스 앤드 워얼드 리포오트」지.


이제 이러한 질문이 생긴다. 전쟁이 일어날 때, 하나님은 실제로 편을 드시는가? 이러한 질문은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폭격 임무를 띠고 약 60차례 독일과 이탈리아를 비행했던 한 사람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수많은 남녀 노소들을 살륙하는 데 가담한 것에 대해 늘 양심의 고통을 느꼈다. 그가 “하나님은 누구의 편을 드시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흡족한 답을 얼마나 찾아 헤매었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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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조만간 종교들의 멸망을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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