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독설
요즘은 끔찍스러운 욕설들이 오히려 친근감과 신뢰감을 확인하는 언어적 수단이 된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도 서로 간에 끊임없이 심하게 퍼붓는 욕설들을 통해 조금도 불쾌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유명정치인도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그의 가족에게 한 것으로 알려져도 높은 지지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욕은 이미 뿌리 깊은 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고 욕을 하는 것이 더 이상 부덕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사회에서는요.
통치자들 간에도 서로 간에 독설을 퍼붓는 경우도 종종 있으며 한국 사람들도 그런 말들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죠.
어차피 사람들은 삶을 포기했고 몇십 년 잠깐 사는 찰나의 삶이 인생의 전부인 것으로 가치관이 확고히 굳어져 있기 때문에 욕하고자 하는 충동을 억제하며 살 이유가 없는 것이죠.
욕의 소재는 주로 동물과 성에 관한 표현들로 되어 있죠.
대중을 개돼지라고 하면서 그 개돼지를 신성한 존재인 것처럼 높이기도 하죠. 국민, 국민 하면서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어 당선되면 큰 영예로 여기기도 하죠. 물론 그런 인간자신도 개돼지죠. 투표 자체가 짐승의 의식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니까요.
사실상 개돼지보다 못한데 개돼지들은 욕은 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인간들은 스스로 짐승으로 여깁니다. 진화론에 의해 머리가 좀 더 좋은 짐승일 뿐이라고 하는 것이죠. 인간 생명을 파리 생명보다 못하게 여긴다고 하는데 개돼지도 그렇게 하지는 않죠, 동족 간에 집단학살을 하는 개돼지는 없죠. 성서에도 구더기나 벌레 같은 인간이라는 언급이 있습니다.(욥 25:6)
인간들은 신적인 존재들을 파충류 같은 동물로 비하시키기도 하니 인간 스스로를 비하시키는 것은 얼마나 더 쉽겠습니까? (로마 1:23)
한편으로 개(반려견)는 얼마나 인간들에게 잘합니까? 사람하고 같이 살 바에야 차라리 개 하고 같이 산다는 인간들이 많은 것이죠. 인간을 개보다 실제로 못하게 여기는 측면이 있는 것이죠.
성서에도 인간들을 죽기 위해서 태어난 이성 없는 짐승이라고 하거나 또 개나 돼지에 비유하거나 그것으로 상징하는 경우가 많죠.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거나 여우라고 하며 각종 동물들을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용을 그 상징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용은 동양에서는 신성하게 여겼죠. 성서에서도 신적인 존재인 사탄을 용으로 상징하기도 하죠. 뱀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동물들을 꼭 나쁜 상징으로 사용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자, 수소, 독수리는 신의 속성을 나타내는 면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어린양은 예수를 상징하기도 하죠. 구원을 받을 사람을 양, 멸망을 받을 사람을 염소로 나타내기도 하죠.
부모의 성관계로 태어난 인간들이 그 태어남이 그토록 저주스러운지 성이나 성기를 욕의 주된 소재로 사용하죠. 또 스스로에게 욕을 하는 경우도 많죠.
성서에는 동료에게 악감정으로 욕을 하는 것에 대해 영원한 멸망을 받을 죄로 규정하죠.
동료에게 모욕적인 말이나 주제넘게 저주를 퍼붓는 말을 하는 인간들은 죽기 위해서 태어난 이성 없는 짐승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는 공식적으로 인간에게 축복의 말과 저주의 말을 할 수 있으며 그 숭배자는 동료인간에게 그것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감정적으로 독설을 퍼붓는 경우와는 전혀 다릅니다. 신념적으로 경고를 전하는 것이죠. 예수도 그 당시의 위선자들에게 신랄하게 경고를 전하고 저주를 했죠. 불법의 자식들로 단죄하고 영원한 멸망을 선고한 것이죠. 개 같은 자들은 영원한 멸망에 처해지는 것이죠.
단지 개 같은 자들이 아니라 그냥 개라고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계 22:15)
오늘날 인간들은 감정적 뿐 아니라 사상적으로 신념적으로 스스로를 짐승 같은 존재로 여기고 말과 행동을 그렇게 하죠. 실상은 짐승보다 훨씬 못하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짐승들은 세대를 거듭하여 영원히 생존할지라도 조만간 짐승 같은 인간들은 이 땅에서 영원히 소멸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