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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May 27. 2024

생명과 고통

생명과 고통


인간에게는 신제적으로 고통을 느끼는 기능이 있습니다. 고통은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신체의 통각기능을 마비시켜 뼈가 부러지거나 살이 찢어져도 아프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복통이나 두통, 치통 등을 느끼지 않게 된다면 이내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고통은 생명을 잃지 않는 조처를 취하라는 신호가 될 수 있죠.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느껴야 하는 경우에 오히려 쾌락을 느낀다면 더 위험하겠죠. 칼날이 몸 안으로 깊이 들어올수록 쾌감이 더 커지는 경우요. 신체에 실제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는 생각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 즉 양심기능에는 그런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4:17-19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주 안에서 이것을 말하고 증언합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이방 사람들이 쓸모없는 생각으로 걷는 것처럼 걷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그들 속에 있는 무지와 마음의 무감각 때문에 정신적으로 어둠 속에 있으며 하느님께 속한 생명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도덕 감각을 상실한 채 자신을 방종에 내주어 온갖 더러운 일을 탐욕으로 행했습니다.


많은 에베소 사람들은 “모든 도덕 감각을 상실”했는데, 이 표현은 문자적으로 “더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이 참으로 옳고 그른지 배우지 않은 에베소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창조주 앞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이 “정신적으로 어둠 속에 있으며 하느님께 속한 생명에서 멀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에베소는 심한 부도덕과 방종으로 유명했습니다. 도시의 극장들에서는 물론이고 종교 축제 때에도 음탕한 말을 흔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이러한 상태가 훨씬 만연해 있죠. 사람들은 양심의 괴로움을 느껴야 할 것을 쾌락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우선 폭력과 파괴와 살인에 대해 그렇게 느끼죠. 그런 것이 있어야 재미있어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영화나 드라마는 찾기 힘들죠. 또 그런 게임이 인기가 있습니다. 소위 e-스포츠라는 것의 가장 인기 있는 종목들이 그러한 게임들이죠. 


음란물 또한 그러합니다. 역겨움과 혐오감을 느껴야 하는 것에 쾌락을 느끼죠. 로마의 경기장에서 행해지던 온갖 잔인하고 역겨운 것들을 영상으로 집안에서 편안하게 즐기는 것이죠. 


영적으로는 고통을 느끼는 기능이 마비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고통스럽게 느껴져야 할 것들을 쾌락으로 느끼게 되었죠. 


그 결과는 생명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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