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조정해야 하는가?
인간의 신체 조건은 허약하고 불안정하고 까다롭기 짝이 없는데 그 조건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환경을 신체 조건에 맞추어야죠. 산소가 있고 빛이 있고 온도도 특정범위 내라야지요. 다른 행성에 이주해 살려면 여러 조건을 인간 신체에 맞추어야지 인간이 그 행성의 조건에 맞추어 신체를 조정할 수는 없습니다.
삶의 한 목적도 인간의 신체에 맞게 환경을 조정하고 그것을 확대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지구에서도 그렇습니다. 사막지역이나 한랭지역은 거의 거주하지 않죠. 상대적으로 조건이 좋은 지역에서도 집이 필요하고 에어컨이나 난방기 같은 것이 필요하죠.
숨도 쉬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화장실도 가야 하고 잠도 자야 하고 잘 때는 쿠션도 필요하죠. 눈에 보기 좋은 것들이 필요하고 듣기 좋은 것들도 있어야 하죠.
인간은 신체의 까다로운 조건에 꼼짝없이 속박되어 있지만 그에 비해 정신은 자유분방하기 짝이 없죠. 머리와 발이 따로 따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의 힘을 사용하여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도 하는데 갈증이 났을 때 물을 마시지 않고 매실 같은 것을 상상하여 입에 침이 고이게 하여 그것으로 갈증을 해소한다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죠. 배가 고팠을 때 먹는 상상으로 실제로 배고픔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건강하고 젊다고 상상해도 실제로 병이 낫고 건강해지는 효과가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그런 사상을 보급하는 사람들의 그런 면에서의 실상은 어떠합니까?
눈을 감고 리얼하게 머릿속에서 음악을 떠올리고 아름다운 해변을 산책하는 명상을 한다고 해도 실제 그렇게 하는 것에 비해 또한 그렇게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에 비해 그 효과를 얼마나 누리는 것일까요?
끌어당김을 법칙을 활용하여 상상력을 잘 사용하면 부자가 되는 것도 현실화할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 물질욕의 절실함만 드러내 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지구의 물리적인 환경은 다른 행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인간의 수명을 100살도 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열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그 환경을 호전시키기에는 능력 부족이죠.
더 심각한 것은 영적인 환경입니다. 오랫동안 영적인 환경은 종교적, 철학적, 이념적 거짓에 지배되어 왔는데 그에 더하여 진화론이나 유몰론 같은 과학적 거짓이 더하여졌죠.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듯이 더 좋은 영적 환경을 적극적으로 찾는 경우도 있는 것이죠. 지금은 신체적으로 영적으로 병들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 있죠. 그리고 병들어 있죠.
인간의 힘으로 환경을 호전시켜보려 하는 시도는 절망적인 실패입니다. 물질적, 영적으로 인간에게 최적의 환경을 갖춘 곳으로 시공간적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죠. 먼저 영적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리적 환경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필연적으로 호전됩니다.
영적인 낙원은 지금 형성되어 있으므로 그리로 향한 영적 망명을 할 기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