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믿음과 무의식

by 법칙전달자

믿음과 무의식


일상적으로는 '무심코', '생각 없이' 한 언행에 대해서 무의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무의식'에는 정반대의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은 처음으로 듣고 보고 배우고 익힐 때는 의식을 온전히 기울입니다.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며 다른 것을 하지 못합니다. 그것에 전 신경을 쓰고 온전한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해야 하죠. 신입사원이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복잡한 약도를 보고 처음으로 목적지를 찾는 경우도 그렇게 해야 하죠. 뇌는 그것 말고는 다른 것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그렇게 하여 익숙해지면 몸이 그것을 외웠다고 할 지경이 되면 거의 자동적으로 그 일을 실수하지 않고 수행하게 되죠.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훈련된 먹고 걷고 하는 일을 비롯하여 많은 행동들을 그렇게 하게 되죠. 음악을 들으며 음식을 먹으며 산책을 하는 것입니다. 직장으로 출근을 하고 매일 하는 그 일을 힘들지 않게 처리하는 것이죠.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의 비중의 커져 나이가 들수록 95%, 99%와 같이 그 비중이 커지는 것이죠.


몸은 무의식의 실체라고 하며 이런 경우에 적용되죠.


반면에 의식적으로는 보지도 듣지도 않았고 교육을 받지도 경험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융인 경우 개인무의식, 집단무의식과 같은 표현을 씁니다.


돈, 물질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한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철저한 물질주의자로서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죠. 반복적으로 암시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에 대해 한 번도 공부한 바가 없는데 하느님을 믿으면 뭔가 자유를 구속받는 것이라고 느껴 본능적으로 거절하게 되는 현상도 이에 해당하죠. 세상의 풍조를 따라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고 후성 유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도 하는 것이죠. 마치 유전된 것처럼 그렇게 한다는 것이죠.


이처럼 정반대의 두 가지 의미로 쓰이죠.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문구를 사용하거나 구호를 외치면서 포교를 하는 사람들이 있죠. 교회를 다니라거나 예수를 믿으라고 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적극적이지는 않아도 나는 예수를 믿는다든지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모슬렘이나 불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을 유신론자라고 하거나 창조론자라고 하는 경우도 있죠.


의식적으로 자신의 정신 상태를 그렇게 파악하고 표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은 그러한 의식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일상의 무의식에 따라 하는 그의 언행이나 삶의 행태를 보고서는 그의 관념적인 신앙이 뭔지 확인이 되지 않아서 너의 종교가 무엇이냐 하고 묻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 위와 같이 대답한다면 그것은 실제 그와는 괴리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행동의 원리, 삶의 원리인 믿음이 아닌 것이죠. 사실상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는 것이죠.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 그가 하늘정부의 통치자로서 앞으로 인류를 위해 어떤 일을 해왔는지, 그 하늘 정부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빌립보 3:20), 그분의 말씀대로 어떻게 하는 것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인지(요한 17:16.)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해 본 적이 없으며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전혀 그렇게 살지도 않죠. 그러면서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이죠. 실제로는 세속적인 삶을 살면서요. 어떤 면에서 예수는 종교라는 것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기독교라는 표현 자체가, 종교라는 것 자체가 거짓의 다른 표현에 불과한 것이죠. 진리라면 종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진리라는 것도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실제로 그가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 그가 믿는 것입니다. 돈을 믿고 정치를 믿는 것이죠. 그것을 위해 노력을 하고 그것에 관심을 갖고 관련 행동들을 하는 것이죠.


사람들은 위의 두 가지 종류의 무의식에 따라 삶을 삽니다. 거의 그렇게 프로그램된 바에 따라 사는 로버트나 노예와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게 실제 그들이 믿는 바입니다.


그 믿음은 그의 정체성이나 인격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말해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생존여부를 결정해주기도 하는 것이죠. (히브리 10:38,39)


아직 100% 그렇게 되어있지 않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1%라도 남아 있는 인간 본연의 의식이 있다면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무의식, 자신의 실제의 믿음을 살펴보고 그것을 바꿀 기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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