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개 같은

by 법칙전달자

개 같은


개는 네 바ᇐ로 걷고 입으로 직접 음식을 먹죠. 인간도 그렇게 하려면 할 수 있죠. 꽤나 불편하겠지만요. 그런데 개는 그것을 불편하게 느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창조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나무 같은 식물들은 죽을 때까지 한 위치에 있죠. 인간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면 견딜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요? 식물은 그것을 못 견뎌하는 의식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개에 대해 가위로 털을 잘라 줄 수 있고 옷을 만들어 입힐 수는 있죠. 개 스스로는 절대로 그렇게 못하죠. 나무도 흙속에 박고 있는 뿌리로 흙속에서 빠져 나와 다른 곳으로 걸어 옮겨가서 그곳에서 다시 뿌리를 박고 정착하는 것은 스스로는 불가능하죠. 그런데 인간이 그렇게 다른 곳으로 옮겨 심을 수는 있죠. 실제 많이 그렇게 하고 있죠.


늑대의 품종을 개량하여 치와와가 되게 하는 것은 자연상태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있죠. 그런데 치와와에서 늑대가 태어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관련 유전법칙이 있는 것이죠.


늑대소년이라고 하는 아마라와 카마라라고 하는 인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늑대가 젖을 먹여 키웠다고 하죠. 그들은 문자 그대로 개처럼 네 발로 걷고 입으로 직접 음식을 먹으며 살았다고 하죠. 개같이 산 것이죠.


인간이 개의 사회에 동화되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살 수는 있죠. 어떻게 보면 예수는 천사보다 자유로운 입장에서 인간이 되어 이 땅에서 산 것은 그 이상의 희생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사와 달리 육체를 가진 인간들은 그들에게는 없는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많은 제한이 있죠. 새나 물고기 심지어 개미들도 인간에게는 없는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인간이 그것들에 대해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죠.


인간에게도 여러 제한이 있습니다. 나무나 개가 여러 제한이 있는 것처럼요. 그러나 그것들이 그런 제한들에 대해 고통으로 느끼는 의식이 없듯이 인간들에게도 원래는 그 제한을 구속으로, 부정적으로 느끼는 의식을 갖는 그런 모순된 상황은 없다고 보아야 하죠.


인간은 또한 남자이거나 여자이죠. 여자가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에 대해 그렇게 애통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까? 인간도 개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을지언정 천사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심하게 불만스럽게 느끼는 의식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논리적이죠.


인간이 나무나 개에 대해 스스로는 하기 불가능한 그런 변화를 줄 수는 있죠. 그렇듯이 창조주도 인간에게 인간 스스로는 불가능한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죠. 또한 일부 인간에게 천사보다 지위가 높은 영적 존재가 되게 하겠다는 약속도 있습니다.


인간들은 원한다면 나무처럼 한 곳에서 부동자세로 서 있을 수 있고 개처럼 네 발로 기고 입으로 직접 음식을 먹을 수도 있죠. 일부 동물들과 교접을 하는 것도 가능하죠. 일부 천사들은 인간으로 화신하여 인간처럼 음식을 먹고 관계를 갖기도 했죠.


인간들이 유전자에 대한 지식을 갖고 그것을 응용할 수 할 수 있다면 영적 존재들은 더하겠죠. 신체적 능력이 월등한 거인들을 산출할 수 있겠죠.


어떤 말에 대해 개소리라고 하는 경우가 있죠. 개소리는 인간이 그 의도를 알 수 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죠. 개를 인간보다 귀하게 여기는 어떤 인간들은 그 소리를 분별하여 그 소리가 의미하는 바에 따라 개에게 해 주기도 하죠.


그렇지만 개가 거짓을 짖는 경우란 생각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인간의 소리들은 그런 면에서 개소리보다 못한 경우가 있어 그 소리대로 했다가는 개보다 못한 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많죠. 인간들도 개소리에 따라 행동을 했다간 개죽음을 당한다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인간의 짖어댐은 사실상 모두 개소리보다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제각기 짖어대는데 성서에서는 그렇게 짖어대는 자들을 개 같은 자들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개들이라고 합니다.


이미 종교인들은 개들로 규정되어 있는 사회가 있죠. 그들은 생산적인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교묘하게 짖어서 사람들을 착취하는 인민의 아편과 같은 존재라서 숙청의 주된 대상이 되기도 하였죠.


물론 인간들의 공식적인 개소리는 한 둘이 아니죠. 사회적 다위니즘, 우생학, 유전자논리라는 것이 있어서 예를 들면 생물계를 지배하는 유전자 원리라는 것은 유전자는 자신의 보존에만 관심이 있고 인간 개개인의 생존이나 안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죠.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일부 인간들(통치자)의 생존을 위해 다수의 인간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는 것이죠. 통치자들의 명령에 따라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는 것이죠. 독일의 주교나 러시아의 정교의 수장이 히틀러나 푸틴에게 아첨성 핥음을 한 것은 유명하죠. 역사상 종교적인 개들이 정치적인 개들에게 그런 행동을 헤온 것은 관례적이죠. 정치적 개들이 짖으면 종교적 개들이 함께 짖고 핥아 온 것이죠.


적대적인 나라들 사이에는 요즘도 연일 개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는 것을 볼 수 있죠. 남북한 사이도 그렇도 남쪽도 여야 사이가 그렇죠. 서로 짖어대는데 여념이 없죠. 정객들이나 국민들이라고 하는 인간들이나 서로 나뉘어 짖어대기 바쁘죠. 공식적으로도 그러하고 일상적으로도 짖는 소리로 가득하죠. 특정지역이 아니라 세계전역이 그러하죠.


개 같은 세상이 아니라 개들의 세상인 것입니다.


예수도 개들이라고 하고 있으며 해치는 자들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마태 7:6 계시 22:15)


세상은 곧 죽어 없어질 개 같은 아니 개인 사람들과 진짜 사람의 두 부류가 일시적으로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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