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한 탐색
삶이란 일면 여로, 여행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여정이 되는 것이죠. 감상하면서 음미하면서 관조하면서 의식을 풍성하게 해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름의 소회를 글로 써가면서 그렇게 할 수 있죠. 자연적인 경관에 불미스러운 것이란 없죠. 살펴보면 모두가 절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인생에서 경험하는 것들도 그러한 것들이어야 하지만 현재까지의 현실은 그렇지 않죠. 인간은 경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좋지 않은 현상들이 왜 생기는 것인가? 등등 사색의 대상은 한둘이 아닙니다. 인간의 의식 자체에 대해서도 사색할 수 있죠. 부정적인 현상들에 대해서는 결코 여행하는 기분으로 하는 탐색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름의 감상이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죠. 글로 쓸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어떠하다고 구체적으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그것으로 사상체계를 만들어 그것이 진리인 양 퍼트리는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에는 심오하고 비범한 통찰력이 베여있어 사람들을 감복하게 할 수 있고 그는 사상가로 존경을 받을 수 있죠.
결론적으로 그것은 겸허하지 못한 주제넘고 자가당착적인 것으로서 인생의 여로에 진정한 안내서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지도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르니까요.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하는 것이죠. 중국에 제자백가의 시대에 그리스에도 그에 상응하는 사상문화가 절정이었죠. 석가모니도 그 당시 인물인데 그의 사상이 어떤 것이었느냐에 대해선 한국에서만 불교 종파가 열 가지가 넘는 정도이죠.
인간이 보기에 어떤 위대한 사상가라도 그리고 그 추종자가 아무리 많고 그 사상이 담긴 책을 경전이라 여기고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 나름의 주장이 담긴 모든 것은 인간 본연의 겸허함의 상실에서 나온 것입니다. 창조주의 생각 즉 진리와 다른 것이죠.
물론 인간들이 그런 사상을 공부한다 해도 그것을 자신의 인생여로의 지침으로 삼기 위한 것은 아닐 수 있죠. 나름의 또 다른 결론을 내리는데 참고 삼기 위한 것일 수 있죠.
주제넘음이란 겸허의 반대이죠. 피조물로서 태어난 인간이 기껏 몇십 년 나름의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그 온전치 못한 지능으로 아무리 많이 생각해 본들 그 귀결은 정해져 있습니다. 불가지 법칙에 따라 진리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죠. 인간의 이성적 사유는 이성을 잘못 사용한 것이고 무가치하고 해로운 것입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상식화된 것처럼 상식적인 것이죠.
아무리 고명한 사상가라 해도 중력에 대해 무지한 시대가 있었듯이 나중에 밝혀진 법칙에 대한 무지를 바탕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거스른 사고를 하여 내린 결론은 필연적으로 거짓이 될 수밖에 없죠.
과학의 종말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과학이 인생의 안내서로서 종말을 고했다는 암시가 담겨 있기도 하죠. 철학에 대해서는 이미 그렇게 결론이 내려져 있죠.
세상은 이미 어떤 면으로 끝나 있습니다.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기간 동안의 사형수와 같은 입장이죠.
그래서 절망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다행스럽다는 것입니다. 어둠이 걷히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드디어 절경을 펼쳐지고 참다운 삶의 여로를 시작할 수 있게 되니까요. 초기의 생명길은 좁고 협착하지만 멸망의 모든 길이 없어지면 모두가 아름다운 생명길이 되죠.
겸허하게 생명길을 택한 사람만 누릴 수 있죠. (예레미야 21:8. 마태 7: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