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의식하는 진정한 자유
혼자 있을 때 가장 큰 자유를 느낀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가 보고 있는 중에는 불편한 점이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죠. 의식해야 하고 또 고려해야 하는 것이죠.
혼자만의 공간에서 그가 자유롭다고 하는 그 경우에 그가 하는 행동에서 그가 누리는 자유의 질이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인격, 속사람, 영혼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죠. 아니 그것은 그의 의식의 상태, 의식의 수준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절대적인 견지에서 혼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눈이라는 것을 만든 근원에 의해 한 순간도 빠짐없이 감찰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시 94:9)
창조주가 아닌 영적인 존재들이 개개인의 사생활을 어떤 이유에서 어느 정도까지나 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일거수일투족이 온전히 개방되어 있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의식, 생각과 감정마저도요.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행동만을 하게 되는 것이며 창조주가 보더라도 기뻐할 만한 생각만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생각이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기를(시 104:34)"하고 자신 있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이죠.
다른 사람이 보거나 알면 떳떳하지 못할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자유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잠언 18장 1절입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자는 그 자신의 이기적인 열망을 추구하는 것이니, 실용적인 지혜를 모두 거스르며 나아간다.
지혜롭지 못한 이기적인 갈망을 개방된 곳에서 추구할 수는 없지요. 고립된 곳에서 하는 그러한 추구는 그에게 행복한 자유를 맛보게 하는 것일까요?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 창조주 앞에 설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죄 많은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수치스럽고 추한 일이 오히려 하기가 더 힘들고 역겨운 것이 아닙니까? 자신이 그런 인간으로 되어 있다면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일이죠. 고립되고 폐쇄되고 어두운 곳이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인간이 누리게 되어 있는 모든 즐거움은 감사하면서 공개적으로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부부간의 성행위 같은, 어떤 이유에서 폐쇄된 공간이 필요한 경우에도 창조주에 대해서는 감사하면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이죠. 즐기라고 명령하시는 분이니까요. (잠 5:18.19) 흠뻑 즐겼다는 것이 알려져도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요.
떳떳하게 드러내놓고 할 수 없는 행위들을 할 수 있는 것을 자유라고 잘 못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인간으로서 공식적으로 승인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