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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May 30. 2024

자유와 둘째 사망

자유와 둘째 사망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는 어떤 면에서 절대적이고 무제한적입니다. 한편으로는 또한 많은 물리적, 생리적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부여된 자유라고 할 수 있는 면에 대해서는 그렇다는 것이죠. 


우주의 창조주에 의해 절대적으로 보장받은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아무것도 이 자유를 제지하지 못합니다. 이 자유의 사용과 관련해서는 창조주는 아무것도 프로그램해놓지 않았습니다. 


그 원리는 가장 큰 신비 혹은 영원한 신비가 될 수 있을지언정 그렇습니다. 원리는 몰라도 인간은 자유롭습니다. 자유롭다는 것이 법칙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 자유가 가장 으뜸 되는 법칙이라는 것이죠. 


그 자유에 포함되어 있는 의미도 심오하고 광대하여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신성이 반영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은 자유롭다는 면에 있어서 신과 같은 면이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자유로워 저주스러울 정도라는 취지의 말을 사르트르가 하기도 했죠. 이 자유는 생명과 아울러 비할 바 없는 소중한 선물이기도 합니다. 


어떤 생각이나 행동도 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들 자신이었습니다. 자유를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죠. 자신이 누리게 될 것도 아닌데 생명을 취하기도 하죠. 다른 인간의 권리인 것을 침해하는 것은 자유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기도 하죠. 


자유로 타인의 목숨을 취할 뿐 만 아니라 스스로의 목숨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죠. 사형에 해당하는 죄도 범할 수 있죠. 


인간이 자유롭다는 것은 생각은 물론이고 행동의 과정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철저히 법칙에 의해 관장됩니다. 아무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전혀 예외가 없습니다. 그 누구든요. 의식을 가진 모든 존재는 엄격하게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해 법칙의 적용을 받습니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우주가 운영되는 기본 조건이며 원리이죠. 


인간으로서의 생명과 그에 따른 자유는 전적으로 주어진 것이어서 자신의 선택이 아닙니다. 선물인 것이죠. 이를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여 자유를 잘못 사용하여, 즉 법칙을 거스르는 방법으로 사용하여 생명을 잃게 되죠. 


생명을 잃게 되는 원인은 유전법칙과 무지에 의합니다. 법칙에 대한 무지이죠. 유전법칙에 의한 것은 동가상응(대속)의 법칙으로 상쇄되어 있고 무지로 인한 것은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인간이 한번 죽는 것은 진정한 죽음 즉 영원한 소멸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서에는 첫 번째의 죽음이 둘째 사망, 즉 영원한 멸망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알려 주죠. 과거에 죽은 일부 사람들과 오늘날 멸망될 사람들이 그에 해당하죠. 


지식, 진리를 접할 기회가 반복적으로 주어졌음에도 고의적으로 끝까지 거절한 사람들이죠. 과거의 상당수의 사람들처럼 진리에 접촉할 기회가 없었던 그런 경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 인류의 99% 이상은 그런 죽음에 처하여져 영원히 소멸하게 됩니다. 물론 스스로도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죠. 현 생명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돌이킬 여지가 없이 확고하게요. 그리고 이 악한 세상에 속하여 죽을 때까지 불의한 삶을 살 것입니다. 


그들이 다 멸망되고 나서 세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나면 과거에 기회를 얻지 못하고 죽었던 사람들의 부활이 있게 되죠. 물론 과거에 의롭게 살았던 사람들의 부활은 당연하고요. 


그들은 늙지 않고 병들지 않게 된 그런 과분한 은혜를 받은 상태에서 다시 진리를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도 자동적으로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그 선택은 그들의 자유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된 많은 수의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에 거스르고 대항하기 위해 집결하죠. 그러다 둘째 사망,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되죠. 


법칙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왜 생명과 자유의 소중함에 대해 그토록 인식이 없는 것입니까? 그런 인식 없음에 대해 아무에게도 책임을 돌릴 수 없습니다. 스스로 너무나 확고하게 그 절대 자유를 사용하여 거짓과 악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죽었지 그 그릇된 생각과 악을 버리지 못하겠다고, 그 자유를 사용하여 전적으로 스스로 확고하게 선택을 하기 때문입니다. 


악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제지되지 않지만 멸망은 절대로 피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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