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더 중요한가?
그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보다 하는 것보다 사람이라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사람의 정체성은 그의 신분이나 직업이 아니라 그의 가치관과 인격으로 정해지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인간은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로 기본인권을 존중해주어야 하고 인도주의를 베풀어야 한다고 하기도 하죠. 그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벗어나 동료인간에서 용인해서는 안 되는 몹쓸 짓을 한 경우에도 최종적으로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원칙에 따라 기본 인권은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하기도 하는 것이죠.
한편 그의 소속이 어디냐, 그의 이념이 무엇이냐에 따라 바로 목숨을 빼앗는 경우도 많죠. 사람으로서의 존재를 임의로 중단시켜 버리는 것이죠.
이 세상은 기본적으로 혼란과 혼동의 세상입니다. 나름대로 제각기 거짓되고 악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실현된 무질서, 혼돈의 상태이죠.
사실 사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없고 사는 방법에 대한 진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고 인간의 가치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는 사람의 심리가 매우 섬세하게 묘사되고 그런 면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죠. 작은 면까지도 매우 소중히 다루어지고 그런 심리묘사와, 관련된 상황을 잘 그려내는 사람은 뛰어난 작가로 인정을 받습니다. 노벨문학상 같은 큰 상을 받거나 장기간 베스트셀러가 되고 시나리오를 쓸 때마다 히트를 치는 것입니다.
인간의 고귀하고 소중한 가치를 잘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러한 면을 매우 섬세한 면까지 세심하게 고려해서 정책에 반영하고 공무적인 일을 보는 경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할만한 측면도 있지만 그것은 극히 작은 한 단면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꾸며낸 사람도 결국 세상의 독성이데올로기 중 하나를 수용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심리적 통찰력은 그의 인격의 중추적인 면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크게는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 생명이 무엇인지, 삶에 관한 문제들이 공식적으로 규명되어 있지 않죠. 진화론 유물론적 관점에서부터 다양한 신비주의적 관점에 이르기까지 매우 성격이 다른 주장들이 공존하는 것입니다.
창조의식을 정확하게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에게 답이 없는 것입니다. 수십억 부가 배포된 성서에 간명하게 명시되어 있지만 그것을 기독교가 선봉에 서서 거부하고 있는 것이죠.
최근 백 년 이상 관련 진리는 반복적으로 선포되고 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 무지한 상태는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입니다.
인간 개개인은 선물로서 그에게 주어진 고귀한 생명에 대해 엄숙한 책임이 있으며 그것을 너무 천하게 다루어 생명을 유지할 자격이 없음을 판정받아 멸망에 처해지는 것은 전적으로 그 자신의 책임입니다.
그가 사람으로서 소중한 생명을 부여받았다는 점에 대해 올바른 인식이 없는 사람은 사실상 사람이 아니며 그러므로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로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처우도 받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사람이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면 이 '어떤'에 있어서 기본적인 자격미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살지 못하는 것이죠.
인간은 세상을 이미 망쳤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살 자격이 없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