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방법
어떤 방법을 찾는다는 것은 가만히 있어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차피 죽으니까 죽는 방법을 찾을 필요는 없는 것이죠. 찾는다면 수명을 앞당겨 바로 죽거나 일찍 죽는 방법을 찾는 것이죠. 그런 경우는 있어도 병드는 방법이나 늙는 방법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가만있어도 그렇게 되니까요. 오늘날 사람들이 찾는 것은 젊어지고 건강해지는 방법이죠. 죽지 않는 방법은 아니더라도 장수하는 방법을 찾고 있죠.
최초의 인간은 그런 방법들을 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늙거나 병들도록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죽도록 되어 있지도 않았죠. 그러니 죽으려면 방법이 필요했죠. 선악과를 따먹는 것이 바로 그 방법이었습니다. 그의 후손들 모두를 죽게하는 방법이었죠.
인간의 죽음은 우주에서 가장 큰 모순 혹은 부조리라고 합니다. 죽는데 왜 사는가라는 말이 있죠. 여기서 죽음이란 의식의 영원한 소멸이라는 전제하에서입니다. 살면서 축적된 그의 모든 것의 완전한 소멸이니까요. 존경받으면서 오래 사는 삶일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소위 빅뱅과 함께 어떤 사람이 138억년 전에 태어나 엄청난 지식과 경륜을 쌓으면서 살아왔는데 젊고 건강한 상태에서 오늘 죽어서 영원히 그의 모든 것이 소멸된다고 할 때 그는 그 때까지 왜 산 것입니까? 14년 살기 위해 오늘 태어난 개보다 못한 것이 아닐까요?
인간이 전적인 피조물인데도 불구하고 창조를 무시하고 창조주와 독립된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은 아이가 자신이 스스로 생겼다고 생각하고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 그 어느 곳이든 맨몸을 드러내면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 몇초라고 합니다.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영역은 한계가 있는 것이죠. 영적 영역도 그러합니다. 창조의 법의 영역하에서 살아야죠. 그래야 생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근데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어서 우주인이 우주선 밖으로 나가 우주복을 벗어 죽는 선택을 할 수 있죠.
지금의 99% 이상의 인간은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과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 인양 생각하여 비유적으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어떻게 보면 찰나라고 할 수 있는 100년도 못 되어 죽게 되는 것이죠. 인간이 생리적으로, 뇌과학적으로, 심리적으로, 논리적으로 등등 관련된 모든 측면에 내재되어 있는 영원성과 모순되게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도 인간들은 죽는 방법으로 살고 있습니다. 돈 한 푼 안 드는, 사는 방법을 완고하게 고의적으로 무시하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