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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l 04. 2024

기록된 것 밖으로

기록된 것 밖으로 


인간이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은 무한합니다. 그런데 문학적 상상력, 창의력을 발휘하여 소설이나 시를 쓰는 경우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여 그렇게 해야 하죠. 그 언어에 대해 나름의 창의력을 발휘한답시고 기존 언어를 거부하고 자신이 만들어 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전혀 무의미합니다. 


물론 학문적 영역에 있어서도 통찰력이나 추리력을 발휘하여 발견한 것이나 개발한 것에 대해서도 그러하여야 합니다. 기존의 언어를 사용하여 발표해야 하는 것이죠. 


학문과 예술은 기존에 있는 것들애서 벗어나 영역을 확장해갈 수 있으며 또 그러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존에 있는 노래를 부르고 연주할 수 있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 필요도 있는 것이죠. 


그러나 영적, 도덕적 영역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록되어 있는 것에서 벗어나서도 더하거나 뺄 수도 없죠. 그렇게 하는 것의 결과는 피할 수 없는 파멸입니다. (고린도 전서 4:6, 계시록 22:18,19)


성서에 기록된 것은 엄청 많아서 그 안에 있는 것에만 고착하기 바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하필이면 그 안에 없는 것이나 그 안에 있는 것과 반대되는 것으로 종교의 체제를 형성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 교'라고 한다든지 교회, 목사, 주교' 같은 직책이나 칭호를 비롯하여 성탄절, 부활절의 여러 의식들, 성호를 긋은 것, 십자가나 성모사상을 비롯해 소위 미사나 예배의 각종 의식들이 성서에 전혀 그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나 영혼불멸, 천당지옥 같은 교리들도 그렇죠. 


성서에 기록된 주의 만찬, 그분이 돌아가신 날에 대한 기념에 대해서는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켜지지도 않습니다. 진리 즉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에 대해서도요. 


기독교는 그 어떤 종파이든 성서에 그 기록이 전혀 없는 것들로 그 주요한 것들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록된 것에서 벗어난 것이고 임의로 없애거나 더하여 생긴 가증스러운 존재인 것입니다. 모든 종교가 그렇습니다. 

개인들도 영적 도덕적인 면은 전혀 창의력을 발휘할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전혀 임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와 관련되어 기록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단지 그것에 고착해야 할 뿐입니다. 


그러면 곧 있을 멸망에서 생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생명(영생)에 대해 집착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그에 대한 과도한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생명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당연함, 올바름에 대한 추구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다 죽어도 나는 살아야 되겠어!"가 전혀 아닌 것입니다. 


왜 그렇게 사는 것에 욕심을 내느냐고 하는 비난은 턱없이 어리석고 악한 것입니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악한 것입니다. 그들의 속셈은 역겨운 죄악에 대한 추익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죽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초연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점잖게 주장할지 모르지만 세상의 온갖 악을 지지하고 동조하고 살아왔을 뿐입니다. 그런 식의 말을 할 자격이 전혀 없는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야 되겠다고 해서가 아니라 참되고 올바르게 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생명이 필연적으로 수반되기 되기 때문이죠. 


기록된 것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그것에 벗어난 다른 모든 생각은 역겹고 더러운 것에 불과합니다. 다르게 가능한 정당한 변명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죽어 마땅함입니다. 곧 그렇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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