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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l 11. 2024

상상 자유 분노

상상 자유 분노 


일상에서 사람들은 대개 자유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특별히 소중하게 느끼거나 감사를 나타내지 않고 살지 모릅니다. 그리고 온갖 삶의 우환에 시달리고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인간 특유의 상상력을 활용하여 자신이 군대나 교도소에 있다고 생각해 보면 잠시 자유라는 것을 흠향해 볼 수 있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잠자는 것, 생활의 계획 같은 것은 신경 안 써도 되긴 하죠. 몸이 아파도 치료해 주죠. 대개 치료비도 들지 않습니다. 의식주에 대한 비용도 들지 않으며 요즘 한국 같은 데는 일반 병사도 상당한 월급을 받기도 한다고 하죠. 


그렇다고 해서 교도소나 군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까? 대개 끔찍하다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의식주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일일이 신경 쓰고 직접 해야 하고 비용도 들어가지만 그래도 군대나 교도소보단 비교도 안되게 좋다고 할 것입니다. 물론 극소수는 군에 자원입대하기도 하고 일부러 죄를 지어 교도소에 들어가기도 하는 사례도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궁핍하고 힘들어도 대다수는 자유를 택할 것입니다. 


물론 사회에 있다 해도 얽매임 없는 자유를 온전히 누리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많은 얽매임이 있는 것이 사실인데 그것은 상당 부분 자초한 면도 있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만 일해도 필수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 이상을 욕심내는 것이 원인일 수 있죠. 또 무리하게 부양가족을 많이 둔 것도 원인일 수 있죠. 오늘날은 그런 얽매임을 피하기 위해 가급적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는다고 하죠. 둘 다 고난을 가중시키는, 자유를 제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죠. 


물질이나 쾌락을 탐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죠. 웬만하면 돈, 일, 사람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누릴 수 있죠.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지극히 행복한 그런 자유를요. 마음이 평화로우므로 몸이 아픈 일도 별로 없죠. 어떻게 보면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염려도 두려움도요. 


창조주는 원래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었습니다. 지금도 원하기만 하면 어느 정도 만끽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 자유를 그릇되게 사용할 때 그에 대한 분노는 매우 크다고 모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누가 당신의 분노의 위력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격노는 우리가 당신에게 마땅히 품어야 할 두려움만큼이나 큽니다.(시편 90:11)


여지가 없습니다. 매우 엄하여 모세 당시에도 누구나 우환 가운데 시달리다가 7,80 정도 살다가 죽게 되는 것을 면할 수 없었죠. 


10절입니다. 우리의 수명은 70년, 특별히 강건하면 80년이지만, 괴로움과 슬픔만 가득하고 신속히 지나가니 우리가 날아가 버립니다. 


모세 자신은 예외였는데 건강하고 젊은 가운데 그것도 한 번의 잘못으로 자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120세에 죽었죠. 그 당시의 욥은 아마 200세 안팎까지 살았을 것입니다. 


고서에는 신선들이 꽤 오래 살았다고 하는데 의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정신 신체의 상관의 원리에 따라 무병장수 하였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당신은 하느님이십니다.(90:2)


성서는 인간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이 창조주가 불러주는 대로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는 영원하고 인간은 그 형상대로 만들어져 영원할 수 있지만 자유를 잘못 사용한 대가는 매우 엄하게 적용되어 지금도 인간은 100살을 넘기기 힘듭니다. 


주로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이라고 하는 성서에는 부활이나 영생이 직접적으로 강조되어 있지는 않지만 부활에 대해서는 여러 번 언급됩니다. 그리고 영생은 그리스어로 기록된 신약에 직접적이고 집중된 언급이 있죠. 


인간이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삶의 우환을 피할 수 없고 늙고 죽는 것에 대해서도 절대적으로 피할 수 없죠. 

그런데 그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죠. 영원히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은 죽은 사람이 부활되고 사람이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4~16절입니다.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그가 내게 애정을 품었기에 그를 구출하고 그가 내 이름을 알기에 그를 보호하리라. 그가 나를 부르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고난 중에 그와 함께 있고 그를 구출하여 영광스럽게 하리라. 내가 그를 만족할 만큼 오래 살게 하고 나의 구원을 보게 하리라.”


만족할 만큼 오래라는 것은 영생을 의미하며 구원이란 결국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하죠. 


창조주와 그분의 법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분노를 절대로 피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창조주를 알고 순종하는 사람이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 더 확실합니다. 


모세는 오히려 오늘날의 우리를 위해 이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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