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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상학

조건과 근원의 망각에서

by 법칙전달자

조건과 근원의 망각에서


배운 것과 경험한 것이 저장된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스럽고 다행스럽습니까? 그런 것이 기억된다는 것도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 중에 하나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용이죠.


인간은 존재하려면 어떤 공간을 점유하고 있어야 하고 반드시 시간 가운데 있어야죠. 인간의 신체는 반드시 키 즉 크기라는 것이 있고 몸무게라는 것이 있죠. 도저히 존재에서 분리하기 불가능한 조건들이죠.


인간이 이처럼 꼼짝달싹 못하고 묶여있는 조건들은 아마도 무한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실제로 인간이 그러한 것을 거추장스러운 제한으로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런 조건들로 삶을 누리는 것이죠.


인간이 처음에 대개 부모에게서 언어를 배울 때 그 언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의식이라는 것을 할 수 없습니다. 의식이라는 것은 언어를 배 운 한 참 후에 생기는 것이어서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에 '엄마'라는 말을 들을 때 "아! 내가 태어나서 이제 처음 언어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는구나"라고 구체적으로 의식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의식이라는 것은 배운 그 언어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뭔가 듣는다든지 본다든지 하는 것을 조금도 구체적으로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경험이라는 것을 하고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죠.


나중에 "내가 배운 것은 한국어라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는 시점이 있는 것이죠.


언어를 배우는 것이 의식생성 이전의 근원적인 것이죠. 선택의 여지가 없이 종속적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죠. 물론 인간에게 근원적인 어떤 것들도 셀 수 없을 것입니다.


대다수의 인간들은 이런 주어진 조건이나 근원에 대해 무지한 괴물과 같은 존재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걸 안다면 가질 수 없는 생각이나 감정을 지니고 할 수 없는 언행을 하면서 살기 때문이죠. 기본적인 겸허함과 감사와 찬양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99% 이상의 절대다수의 인간들이 그러합니다. 일상적으로 자가당착적인 의식을 가지고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들은 주어진 조건들의 신성함에 비추어 지나치게 천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혐오 발언이 난무하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그 점을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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