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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Aug 11. 2024

자유와 우연

자유와 우연 


인간은 일단은 자유로워서 만취한 상태로 폭주 운전을 할 수 있고 또 그런 차에 치여 죽게 될 수 있죠. 인간은 어이없이 부조리하게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고를 저지르는 것이나 당하는 것이나 제지되거나 막아주는 것은 없습니다. 자폭 테러로 건물이 붕괴되어 그 건물 안에 있다가 죽게 되는 것이죠. 제지되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적입니다. 시기와 우연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데 이는 창조의 한 섭리이기도 합니다. (전도 9:11)


우연이 사람의 생사를 결정짓는 것이죠. 불확정성원리와도 관련되어 있으며 운명에 따라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을 일으키거나 음주운전을 해야겠다는 것은 운명이나 우연 모두 아니죠. 그러나 그에 의해 무고하게 생명을 잃는 것은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우연이라는 단어가 의미가 있다면 이런 경우에 사용되는 것이죠. 불확정성, 양자요동과도 관련되어 있어 예측불가한 일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습니다. 골목길을 도는 순간에 날아오는 유탄에 맞아 죽게 되었다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그가 어떤 사람이냐 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어 은밀한 악행이 있어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만물의 이러한 현상은 창조의 섭리로서 특정하게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지혜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인간에게 부여된 신과 같은 자유의지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이죠.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인간이 근시안적으로 판단하여 부정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무지에 의한 주제넘음입니다. 인류대다수가 그런 주제넘음으로 창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죠. 거의 모든 철학과 소위 학문이 그러한 주장을 하죠. 종교들은 그 반대방향에서 틀린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진화론과 창조론, 무신론과 유신론처럼요. 


모두 말씀 즉 창조주를 무시해서 생기는 일이죠. 전적으로 피조된 입장에서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운명도 우연도 아닙니다.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죠. 


부조리해 보이는 우연,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는 경우 성서에는 바로 부활된 경우들이 있는데 이는 그렇게 죽은 사람들이 미래에 부활될 것임을 보여 주는 예표인 것입니다. 


인간들에게 그렇게 보이는 부조리와 본질적인 부조리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부조리가 있다면 만물은 창조되거나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와 같은 생각을 동일하게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많습니다. 천만명 정도 되니까요. 그 외의 사람들은 비록 모두가 동일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더라도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면에 있어서는 너무나 달라서 심지어 수십억 개개인이 다 다르다고 할 정도이니까요. 


같은 정파 같은 종교에 속해 있어도 얘기 나누다 보면 의견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이죠. 


논쟁적이 되는 것을 피하려면 아예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대화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되고 있는 정도이니까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그처럼 교만하고 주제넘고 어리석고 무지한 것입니다. 창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으면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운명이나 우연이 아니라 그들의 고집스러운 선택에 의해 영원히 소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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