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와 주권과 사랑

by 법칙전달자

통치와 주권과 사랑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말하고 어디로 갈 것인지 등등 자신의 언행과 관련된 최종 결정은 자신이 합니다. 원칙적으로 인간은 자신에 대한 통치자(ruler)입니다. 천부적인 권한이고 자유나 자유의지의 본질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통치는 법에 따라 행하게 되죠. 그 법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 법은 자신이 정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 법을 정할 권리는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인간이나 인간 정부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을 정하는 것, 최고의 통치권, 주권(sovereignty)은 당연히 창조주에게 있습니다.


인간이 서로 간에 지배권, 권력을 갖는다는 것은 우주의 법을 거스리는 것입니다. 법을 만드는 것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 그런 통치권이 일시적으로 허용되어 있죠. 인간들 자신이 우주의 최고통치자를 거부하고 인간 통치자, 인간 정부를 원하기도 했습니다. 무지의 소치이기도 하죠.


그리하여 창조주도 일시적으로 허용하는 인간정부, 인간의 통치권이라는 것이 있어 개인의 스스로에 대한 통치권을 이양하게 되는 것이죠. 서로 간에 공식적으로 창조의 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인간 정부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으며 그가 세상의 배후의 통치자입니다.


반면 예수도 통치자로 임명받았죠. 앞으로 천년 간 직접적이고 공식적으로 통치할 텐데 사탄과 그의 하수인인 모든 인간 통치자, 정부, 국가들을 멸망시키면서 시작되죠.


창조주가 인간 통치를 일시적으로 허용하고 전적으로 임의로 통치해 보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주의 최고통치자를 전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도 그 기조, 방침에 따라 세속의 통치나 통치자에 복종하는 것이 원칙입니다.(로 13:1-6.) 지지나 참여 혹은 반대하는 방법으로 관여하려 해서는 안되며 엄정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통치자들이 창조주의 법을 거스리는 것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죽더라도 그에 순응하거나 타협할 수 없죠. 고대의 통치자들은 특정 신을 숭배하도록 요구하기도 헸죠. 오늘날은 일부 국가에서는 살인조직인 군대에 가는 것을 의무로 규정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응할 수 없는 것이죠. 일세기 당시에는 당국자들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을 금했는데 이에도 응할 수 없었죠.


지상의 통치자들은 그 권위를 창조주로부터가 아니라 사탄에게 받은 것입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심부름군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공공의 복지를 위해 가장 큰 기여를 하기도 하죠.


실제로 통치자의 자질이나 능력에 따라 그 국민들이 누리는 복지는 크게 영향을 받죠. 한반도의 남북을 비교해 보면 뚜렷이 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주권, 최고의 통치권과 관련된 영원한 진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 하느님은 창조주이고 하느님이고, 전능자로서 지고하므로 우주의 주권자(“세계의 주권자”, 시 47:9,)이십니다. (창 17:1; 출 6:3; 계 16:14) 그분은 만물의 주인이자 모든 권위와 능력의 근원이며 통치 체제에서 최고 통치자이십니다. (시 24:1; 사 40:21-23; 계 4:11; 11:15)


지난 수십 세기에 걸쳐 여호와 하느님은 완전한 공의와 심판을 행하고 그분을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널리 나타냄으로 말과 행동으로 사랑과 과분한 친절의 하느님임을 증명해 오셨습니다. (출 34:6, 7; 시 89:14.) 그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악인들에게까지도 친절을 나타내 오셨습니다. (마 5:45; 누 6:35; 로 5:8) 그분은 자신의 주권이 사랑으로 행사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렘 9:24)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자신의 우주에 두고 싶어 하는 인격체는 그분과 그분의 훌륭한 특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첫째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둘째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마 22:37-39) 그들은 여호와의 주권을 사랑하고 그 주권을 원하며 다른 어떤 것보다 그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시 84:10) 그들은 자기들이 독립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분의 통치권이 다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의로우며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분의 주권을 택하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사 55:8-11; 렘 10:23; 로 7:18) 그런 자들은 단지 하느님의 전능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혹은 이기적인 이유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의와 공의와 지혜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여호와의 위대함과 사랑의 친절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분을 섬깁니다. (시 97:10; 119:104, 128, 163)


그들은 사도 바울과 일치하게 이렇게 외칩니다. “오, 하느님의 부와 지혜와 지식의 깊음이여! 참으로 그분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고, 그분의 길은 더듬어 알아낼 수 없구나! ‘누가 여호와의 생각을 알게 되었고,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되었습니까?’ 또한 ‘누가 그분에게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습니까?’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그분에 의하여, 그분을 위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 영원히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로 11:33-36.


통치와 주권과 사랑에 대한 위의 지식은 모든 인간들에게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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