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의 외면
'기린의 목은 왜 길까'라는 문제의 답이 '머리와 가슴 사이가 멀어서'라고 합니다. 그것은 '목'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어서 전혀 의미 없는 답이죠. 그러니까 난센스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양손에 똑같은 칩을 들고 두 칩이 뭐가 다르냐는 문제의 답이 하나는 왼손에 하나는 오른손에 있으니 위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역시 두 칩이라는 말 안에 내포되었죠. 동일한 위치에 있는 것은 다른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 개라는 말 안에 위치가 다르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죠. 이와 같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내포되어 있는 개념을 사용하여 내는 허를 찌르는 문제는 난센스 문제 중 한 유형이 되는 것이죠.
물방울 하나에 물방울 하나를 더 하면 그대로 하나이기 때문에 1+1이 2가 아닌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하나라는 표현 자체가 자연수에 해당되고 이는 하나, 둘 하고 세는 것이 의미가 있는 대상에 적용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물방물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전제에 벗어나는 것이며 양은 그대로 두 배가 되는 것이니 본질을 벗어나는 것도 아니지요.
솜 2kg과 쇠 1kg은 어느 것이 더 무겁냐는 문제가 있는데 문제도 안 되는 것이죠. 문제에 무게의 단위를 사용하여 그것이 명시되어 있죠. 또 무게의 비교가 의미가 있으려면 같은 부피라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하죠. 솜이 부피가 엄청 크면 당연히 쇠보다 무거울 수 있죠. 공기도 그러하죠. 그러한 경우가 아무리 많아도 쇠는 솜 혹은 공기보다 무겁다는 진리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죠. 명시되지는 않더라도 당연히 부피가 같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그 물음 자체에 의미가 생기는 것이니까요. 의도적으로 그 점을 무시한 것이 난센스 문제이죠.
한 아가씨가 빨간 모자, 빨간 구두, 빨간 장갑, 빨간 원피스를 입고 경마장에 갔는데 말이 이를 보더나 깜짝 놀라서 펄쩍 뛰어올랐다고 합니다. 말이 펄쩍 뛴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문제가 있습니다. 답은 '깝짝 놀랐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문제에 그 이유가 나와있죠. 그러므로 그게 답일 이유가 없다는 무의식적 선입관이 생기는 것을 이용한 난센스문제가 되는 것이죠. 깜짝 놀란 이유를 묻는다면 말이 놀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의미 있는 문제가 될 수 있죠.
이와 같이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주어진 조건에 당연히 내포된 것을 묻는 문제는 난센스 문제일 뿐이며 전혀 의미 있는 답은 못되죠. 그저 웃자고 내는 문제이죠. 의외성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니까요.
그 답이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의미는 전혀 없는데 이는 모든 부정적인 명제도 그러합니다. 1은 2가 아니고 3도 4,5,6,7..... 도 모두 아니지요. 집은 개도 동전도 옷도....... 도 아지지요.. 다 맞는 말이지만 전혀 무의미하죠. 조금의 지식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죠. 어떤 것은 그 외의 모든 것이 아닌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굳이 표현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시간 낭비가 될 뿐인 경우가 많은 것이죠.
이런 점을 언급하는 이유는 인간이 하는 사유의 한 본질이 이와 같이 헛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은 '존재의 원인'이라는 언어적 개념이기 때문에 사물의 존재에 신의 존재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이 존재하느냐의 질문은 전혀 의미 없는 난센스 같은 것이죠.
어떤 사람이 한 나무를 보고 저 것은 나의 바깥에 있는 것 같지만 실제는 내 뇌 속에 맺혀있는 것이다. 내 정신의 소산일 뿐이고 바깥에 있는 어떤 실체라고 느끼는 것은 착각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일종의 존재론인 것이죠. 심지어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것이죠. 모두 자신의 상상의 소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자신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하기 위해 뺨을 때렸다 해도 그 역시 자신의 상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이죠. 유아론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떤 나무나 사람을 보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의 의식에 없었던 것이죠. 그의 내면에 없었던 것입니다. 보고 나서 그런 모순된 생각을 한 것이죠. 스스로 착오, 자기 모수ᇿ에 뼈져놓고 다른 사람이 그런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인간의 모든 철학적, 신학적, 종교적 사유의 본질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난센스 문제처럼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것이죠.
인간의 의식작용 혹은 사고라는 것을 할 때 이미 그 안에 내재되어 있어 그것 때문에 의식작용이나 사고가 가능한 것인데 그 자체를 의심하고 부인하는데서 시작하였다는 것이죠.
자기도 모르게 혹은 고의적으로 전제나 조건,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죠.
애초에 답을 얻기가 불가능한 성격, 방향, 운명을 지닌 그런 사고를 하고 결론도 난센스적이거나 무의미한 부정적인 것들이라는 것이ퟦ니다.
철학이나 종교에서 아무런 진리도 지닐 수 없고 산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확립된 진리는 철학적 사상이나 종교교리가 될 수 없는 것이죠. 자기 부인, 자기모순, 자가당착, 영구히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런 궤변으로 세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본질을 알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그런 무가치한 것에 매달려 삶과 세상을 망치고 있는 것이죠.
창조주와 창조 또 그분의 표준을 부인하는 전제에서는 어떠한 추구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허망한 것입니다. 인간들이 연출하는 것은 단지 난센스적인 것이 아니라 괴기스럽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렇게 안 될 수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안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