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를 부리지 않으려면
억지가 가장 많은 분야는 역시 진화론입니다. 진화론 전체가 억지로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을 자꾸 쓰다 보니 목이 길어졌다는 것이죠. 수정란에서 인간 같은 모양으로 되어 가려면 당연히 온갖 형태를 띠기 마련인데 인간이 진화해 온 단계를 밟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죠.
생물진화론뿐 아니라 우주 진화론도 그렇습니다. 먼지 같은 것이 중력에 의해 결합하면서 덩치를 불려서 지구와 같은 행성이나 태양과 같은 항성이 되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먼지의 중력이 서로 달라붙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사람은 먼지보다 비할 바 없이 중력이 크지만 그 중력으로 먼지 하나 끌어당기지 못하죠. 억지라고 느낄 수 없는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종교적인 억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죠. 왜 무고한 어린 아들이 죽었느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교직자에게 질문하면 하느님이 어린 천사가 필요해서 그랬다는 식이죠.
부정적인 현상에 대해 교직자에서 질문을 하면 신의 대변인으로서 모른다고 할 수는 없고 억지를 부릴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적인 주장들도 억지 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정치 경제적으로 결코 만족스러운 상태가 아니죠. 설명이 궁할 수밖에 없으며 억지를 부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모든 영역에 있어 억지가 만연한 것일까요?. 인간이 자기가 모르는 것,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그렇다고 하면 그럼 왜 그런 지위에 있는 것이냐는 비난을 받게 되므로 억지를 부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과학 할 수 있는 능력은 창조주의 선물이죠. 그런데 과학에 인간 이외의 지성적인 존재를 철저히 배제하려니까 억지를 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물이 우연히 생긴 것인데 모든 것이 너무나 정교하고 정밀하니 그런 현상을 설명하려니 지독한 억지를 부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그냥 창조주가 어떻게 사랑과 지혜로 만든 것인가 하고 연구를 하면 전혀 억지를 부릴 필요가 없게 되는 데요.
학계와 종교계의 억지는 쌍벽을 이루죠. 정치계도 물론 그러하죠.
애초에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려니까 잘 안 되는 것이고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억지를 사용해야 합니다.
종교걔의 인사들도 무수한 납득이 안 되는 부정적인 현상을 설명하려면 모른다고 하지 않을 바에야 억지를 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서를 통해 창조주가 대답하게 하면 그만인데 그들 자신이 성서를 창조주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죠.
억지를 부리는 이유가 무지한 대중들에게 통하기 대문이죠. 대중들은 몰리서 물어보는 것인데 자기보다 낫다고 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니 달리 다른 선택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들의 삶은 이러한 억지에 의해 꾸역꾸역 죽기 전까지 지탱해 가는 것이죠. 정말로 비참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비참함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입니다. 쉽게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수 있는 간명한 진리가 있는데 그것을 외면하고 사악하고 어리석고 고집스럽기 짝이 없는 종교인, 정치인, 학자 등에게 답을 구하려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