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피하려다가
요즘은 진리라는 표현 자체를 기피하는 것이 추세입니다. 케케묵은 개념이 된 것이죠. 극심한 개념의 혼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패와 악과 거짓을 가리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요.
인간이 겪는 문제란 지식 즉 진리를 적용함으로써 바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과 일치하게 살았다면 즉 행동했다면 애초에 문제라는 것이 생기지도 않았죠. 복잡한 기계일수록 잘못 다루면 즉 지식에 거슬러 사용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과 같은 것이죠.
인간에게 지식이란 일차적으로 창조주에 의한 선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유와 행복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거부하는 것이죠. 인간의 집단무의식의 가장 중추적인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책에서 읽어 본 것도 아닌데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개 인간적인 생각이란 처음에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중에 아닌 것으로 밝혀져 왔지 않느냐 그러므로 그것은 변할 수 있는 것이며 인간의 연구에 따라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은 진리 안에 들어 있는 기본적인 개념인 불변성과 상충하므로 진리라는 표현을 쓰기에 적합하지 않게 느끼는 것입니다. 그 표현 자체를 피하게 되는 것이죠. 진리는 조금의 가변성도 없으며 발전의 여지가 조금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애초에 진리 즉 지식이 아닌 것이죠.
인간이 지식이 아닌 것을 지식인 것처럼 해왔던 것입니다.
인간이 뭔가 주장할 때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표명하지는 않지만 꼭 그런 것처럼 강하게 주장하죠.
진리의 절대성에 대해 부정적인 주장을 할 때도 그러하죠. 그러나 본질상 부정적인 면이 있는 인간의 생각이란 자가당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진리 혹은 법칙을 거스를 수밖에 없으며 확립된 내용이 될 수도 없습니다. 영적인 진리는 인간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절대적 보편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나 주장이 절대적 보편적이 없는 것이라면 자체모순이죠. 스스로 진리성이 없고 논리성이나 설득력이 결여된 것이어서 심지어 회의론자는 숨도 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그 회의적인 주장이 마치 절대성을 지닌 것처럼 무의식적인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변할 수 있는 것이 진리라면 그 주장 역시 변할 수 있죠. 그 주장이 변하면 진리는 변할 수 없다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파괴를 일으키는 것이죠. 긍정법칙도 파괴하는 것입니다.
인간과 정부라는 인간 집단은 끊임없이 죄를 저지르죠. 끊임없이 실패합니다. 계속 고민거리에 직면하죠. 모두 지식에 의하지 않아서 그러한 것입니다. 그것에 벗어나서 자기 멋대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에 따라 전쟁도 일으키고 범죄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거나 부도덕한 행동을 하는 것이죠. 적어도 바람직하지 않거나 불미스러운 행동들을 숱하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 지식, 진리를 피하려고 해서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그런 것이 없다는 생각도 진리를 피하려는 대표적인 생각입니다. 그 생각 자체는 진리로 여기는 모순을 저지르는 것일 뿐입니다.
이런 생각의 경향이 무의식화되어 있죠. 99% 이상의 인간이 이렇게 되어 있어 자신이 진리를 피하고 있다는 점도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처럼 인간은 거짓에 깊이 뿌리 박혀 있습니다. 거짓의 노예이죠.
인간은 대부분 원하지 않는, 이상적이지 않는 상태에 처해 있죠.
지식을 거슬러서 그렇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든 진리를 피해보려고 오만가지 시도를 하고 변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그러한 집단무의식을 보고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자유를 얻습니다.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