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인간은 누구나

by 법칙전달자

인간은 누구나


인간은 인간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인간은 누구나 영원성과 무한성이 있습니다. 대개 스스로 부정적으로 규정하고 살죠. 스스로 그러함을 부정하고 제한하고 파괴하면서 살죠. 또 타인에 대해서도 그러하죠.

어차피 곧 죽을 인생, 썩어질 몸 하면서 나름의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죠.


인간이 스스로 만들고 선택한 현실이 이상과는 너무 거리가 먼 어떤 것일 수 있죠.


근본적인 원인은 창조의식의 부재, 창조주가 없다고 생각하고 당연히 그분과의 합당한 관계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편 14편1~3절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마음속으로 “여호와는 없다” 하고 말한다. 그들은 타락한 행동을 하고 가증한 행위를 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사람의 아들들을 내려다보신다, 통찰력 있는 자가 있는지, 여호와를 찾는 자가 있는지 보시려고. 모두 다 빗나가고 하나같이 타락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아무도 없다, 단 한 사람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가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실존하는 창조주를 부인하기에 나름의 신학적으로 철학적으로 고안해 낸 가상의 신을 만들었고 여호와는 그 이름을 성서에서 빼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대신 삼위일체의 신을 만들어 놓고 온갖 가증스러운 일들을 해왔습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의 마음에는 참하느님이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도 세속적인 삶을 추구합니다.


알라도 단지 신이라는 의미이며 그들은 창조주인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죠. 유대교도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소위 적어도 성서의 일부를 경전으로 인정한다는 대표적인 종교들도 마음에 참 하느님이 없습니다.

그리고 종교인이 아닌 사람들 중에는 공식적으로 신이 없다든지 신은 죽었다든지 하는 선언을 하기도 하죠. 학계에서는 공식적으로 무신론, 유물론을 채용하죠. 진화론도요.


인류는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창조주의 관점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선행이라고 하는 것 중에 순국, 순교, 순직, 살신성인이라는 것이 있죠. 선한 정도가 아니라 성스럽다는 개념까지 부여하죠. 성웅 이순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치고받고 한 싸움을 한 사람이죠. 성스럽다는 의미가 더해져 기념되고 있죠. 현충사의 그의 영정에 절을 하면 그래도 나의 후손들이 나의 희생을 알아주는구나 하면서 그의 영혼이 흐뭇하게 웃을 것입니까? 사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상상하에 기념관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그러한 인물은 각 나라마다 있고 북한에서는 더 신성화되어 있죠.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이고 나쁜 상황들을 원래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그 무한성이나 영원성은 잠꼬대 같은 소리로 간주합니다. 어차피 죽을 건데 명예로운 이름이라도 남기고 죽자고 하면서 치열하게 싸우는 것입니다. 법칙에 순응해야 한다거나 높은 도덕표준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죠.


지금 사람들의 최대의 소망이란 기껏해야 살아있는 동안 부유하게 안 아프게 살다가 평안하게 죽는 정도이죠. 진정한 선이 무엇인지 알아 그렇게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예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생각정도로도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신체와 정신 자체는 영원과 무한을 지향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진선미성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는 것을 의미하죠.


곧 영원히 죽게 될 사람들은 이러한 점들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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