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도 익숙해지면

by 법칙전달자

기적도 익숙해지면

손안에 전화기, 카메라, 녹음기, 컴퓨터 등등을 다 가지고 다니죠. 그것으로 지구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화상 통화도 할 수 있죠. 음악이나 영화 감상도 할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고 바둑도 둘 수 있죠.

예전 같으면 멀리 있는 그리운 사람의 모습과 목소리를 듣는 것 같은 일은 귀신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런 정도는 귀신에게 빌지도 않았을 일이죠.


기적 이상의 일이죠. 누가 그런 일을 이루어 주었다면 완전히 신적 존재로 추앙받았을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그 이상의 기적들에 익숙해져 있죠. 그런데 당연히 여기죠. 그 개발자가 누군지 알지도 못하죠. 칭송하는 경우도 거의 없죠. 단 과학을 신처럼 여기는 의식이 있는 것이죠.

기적으로 간주되는 성서의 많은 기록들을 꾸며낸 이야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죠. 실제 그런 기적들이 있었다면 하느님이나 예수의 말을 잘 들었을 것이라는 것이죠. 예수가 보여주었다는 기적들은 그냥 꾸민 이야기고 사람들을 현혹시킨 사상가에 불과한 존재였다고도 하는 것이죠.

하느님이 모세를 통해 이집트에 열 가지 기적적인 재앙을 내린 후에 드디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옵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은 그 기적들을 여러 번 목격하였기에 당연하게 여겼을지 모릅니다. 각별한 믿음과 순종심을 갖게 되었을 것 같은데 실상을 그렇지 않아 계속 투덜거리고 반역하였죠. 광야에서는 하늘에서 만나라는 음식이 내렸죠. 그리고 낮에는 구름기동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인도하였습니다.

그들은 기적에 익숙해져 당연하게 여기고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순종이라는 인식과 태도를 갖지 못하게 된 것이었을까요?


예수 당시에도 그렇습니다. 예수는 창조주의 아들이라고 확신을 가질만한 기적들을 소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반대자들은 계속 기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였고 뭔가 그것이 일종이 속임수라는 단서를 잡으려는 의도로 그렇게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귀신이 쓰인 것이라고 주장할 실마리를 얻으려고요.


어떤 상황에서는 입이 쩍 벌어질만한 기적이라도 익숙해지면 별거 아닌 것으로 당연한 것으로 느껴 그에 합당한 인식이나 태도를 갖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은 거의가 모두 기적의 물건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것으로 예전에는 신들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여겼을 그런 기적들을 언제든 체험할 수 있고 전철에서 보면 거의 반 이상의 사람들이 손 안의 물건에서 그런 기적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그런 물건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애초에 부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신이 형상으로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그런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풀 한 포기 자체가 그와는 비교도 안 되는 기적적인 존재이죠.


매일 세포의 복제가 이루어지고 있죠. 광합성도 이루어지고 있고요. 인간은 아직도 광합성 공장을 만들지 못하고 있죠. 스스로 복제하는 휴대폰을 만든다는 것도 아직 요원한 일이죠. 그런데 세포라는 그와는 비교도 안 되게 복잡하죠. 비교도 안 되게 작고요. 그런 것이 끊임없이 복제되어 식물이 성정하여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가장 큰 기적은 인간 자체인데 일상적으로 늘 볼 수 있죠. 새삼스럽게 외경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죠. 창조주의 지혜와 사랑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미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곧 그런 인식 없는 사람들은 영원히 제거되죠. 그리고 과거에 죽었던 사람들이 부활되게 됩니다. 합당한 인식을 가져 죽지 않고 천년통지를 시작하게 된 사람들이 그 부활한 사람들을 맞이하여 교육을 시키게 되죠. 그들은 더 이상 병들지도 늙지도 않게 됩니다. 과거의 죄를 추궁받지도 않죠. 그들은 그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느낄까요? 연일 타인이 부활되는 기적들을 보게 되고 질병이나 노쇠 죽음이 없는 것도 확인하게 되죠.


그러나 그런 식의 큰 은혜를 입고도 그들은 올바른 인식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죠.

이사야 26장 10절입니다.

악한 자는 은혜를 입어도 의를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올바른 땅에서도 악하게 행하며 여호와의 위엄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부활된 사람들은 이전의 개성과 기억을 유지하고 태어나 자아가 연속되며 타인들도 그임을 알 수 있죠.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우주에 만연된 기적 가운데 살면서도 도무지 합당한 인식을 나타내지 못하며 법을 거스르고 반역적인 삶을 살듯이 곧 있을 천년 통치기간에도 그렇게 될 것입니까?


그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수 백 년 간 살다가 집단적으로 공식적이고 노골적인 반역행위를 하는 가운데 영원한 멸망에 처해지죠.


인간의 자유는 절대적입니다. 결코 창조주가 그렇게(악하게) 되도록 프로그램한 것이 아닙니다. 운명도 아닙니다. 또 그러한 절대적인 자유를 부여한 것은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인간도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고 있죠. 자유를 억압하는 정권들을 악한 정권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자유를 악하게, 사랑이 아닌 방법으로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영원히 제거되는 것 역시 절대적인 창조의 법칙에 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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