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행복
마음이 순수하고 의식이 정상적인 사람들은 쉽게 큰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간과해 버리는 것들에 대해서도 그러하죠. 심지어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지극한 행복을 느끼는 경우들이 있죠.
너만 그렇게 행복해선 안 되는 것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이죠.
그런데 완전한 인간이란 없는 것이죠. 돌이켜 보면 수치스러운 과거나 끔찍스러운 과오가 있어 떠오를 때마다 몸서리쳐지는 죄책감을 느끼게 될 수 있죠. 결코 행복한 순간은 아니죠. 행복에 젖어있다가도 쓰라림이 엄습하게 될 수 있죠.
고난 가운데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영상이 떠오를 수 있죠. 결코 마음이 마냥 평화스러울 수만 없는 것이죠. 그가 누구이든 하나의 지체인 것이죠. 한 몸의 일부인 것이죠. 몸의 한 부분만 아파도 그걸 해결하지 않으면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없는 것이죠. 평화롭지 않은데 온전히 행복할 수 없죠.
80억 중에 한 사람이라도 곤경에 처해 있다면 우주에 곤경이 있는 것이죠. 우환을 겪고 있다면 우주에 우환이 있는 것이죠. 즉 그것은 자신의 곤경이고 우환인 것입니다.
그것이 없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행복을 온전히 만끽하지 못할 수 있죠. 지나친 생각일까요?
고난의 원인은 불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불의가 드러나면 집중적으로 구설수에 오르죠. 침을 튀겨가며 입방아를 찧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그 점에 있어 가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대진영의 사람의 불의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최대한 공격을 하여 권력을 약화시키거나 빼앗는 구실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죠.
불의는 고통의 원인이라 불의한 자는 권력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하는 것이죠. 물론 그런 식으로 주장을 하지는 않죠. 그런 원리를 모르기 때문이죠. 정치인이 된다는 것 자체가 불의이기 때문에 그런 원리를 알면 정치인이 되지 않죠.
동료인간의 불의를 자신의 불의라고 생각하고 즉 자신의 몸에 생긴 상처라고 생각하고 치료하는 데만 집중해야죠. 그가 불의에서 벗어나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회복된 상태가 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한 지체라는 가정하에서요.
그런데 상처가 치료되지 않고 종양처럼 번지기만 한다면 과감하게 그 종양을 제거하여야 하죠.
마찬가지로 불의한 자가 인정하고 뉘우치고 회개하기를 완강하게 거부한다면 암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도려내는 것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격리시키거나 제거해야죠.
성서에서는 그런 존재들을 개라고 하기도 하는데 정치인들이 상대의 불의에 대해 극심하게 공격하는 것은 개들이 패로 나뉘어 서로 짓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짖는 정도가 아니라 물어 뜯어 죽이려하고 있죠.
인간들은 이런 면에서 대부분 개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존재들은 더 이상 같은 지체가 아닌 것입니다. 도와주면 오히려 그 불의에 동참하는 것이 되는 것이죠. 그런 판단과 정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지 않습니다. 우주의 심판관에게 있는 것이죠.
현재는 우주에 불의가 존재하죠. 인간은 불의할 수밖에 없지만 우선 치유의 마련으로 자신에게 불의를 제거해야 하죠. 자격이 된다면 동료인간의 불의에 대해서도 그렇게 되게 도와주어야 하죠. 그걸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면 동료인간이 아니고 개이기 때문에 심지어 그가 제거된다 해도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의가 제거되는 것은 오히려 기뻐할 일이죠.
성서에는 거룩이라는 개념이 매우 반복되죠.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불의가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죠.
미래의 어느 시점 이후에는 불의가 생길 때마다 즉각 제거될 것입니다. 판례가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허용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불의가 왜 고통의 원인인지를 더 이상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우주 전체에 불의가 전혀 없다는 면에서 온전히 거룩해지는 것이죠. 완전한 행복이 실현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