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죽음
삼국지에서 조조가 죽었었다고 했을 때 중국 전체가 충격에 빠지면서 조조도 죽는구나 하고 각별한 놀라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합니다. 매스컴 등에서 자주 보아 친숙해진 유명인이나 소위 공인들의 죽음에 대해 사람들은 유별나게 느끼는데 이는 인간에게 결코 죽음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전쟁터에서 소위 삭제된 것이라고 하는 전사자수 발표를 들을 때도 일견 당연하고 대수롭지 않게 느낄 수 있지만 마음 한 켠에 뒤틀리는 착찹함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죠.
유명인의 죽음은 대개 70대 이후의 병사이고 전장에서의 죽음은 젊은 나이의 비명횡사이죠.
죽음에 대해서는 해결책이 없으니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에 깊이 빠져야 이로울 것이 없으니 포기하는 것이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은 스스로는 삶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주장들과 견해들이 있을 뿐이죠.
“죽는데 왜 사나?” 하는 것입니다. 그가 살았을 때 한 감동적인 연기, 감미로운 노래, 정치행적 등등은 대중의 기억 속에 세대를 거듭하며 길이 남는다고 하고 그것에 가치를 둘지 모르지만 그들도 일견 곧 죽어 없어질 하찮은 존재에 불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곧 죽어 없어지는 것이라면 본질적으로 모든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영원한’, ‘불후의’ 등등의 표현을 쓰지만 그것은 순간적인 감상에 불과할 수 있죠.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창조주만이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전도서 1장 2,3절입니다.
지극히 헛되다! “지극히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사람이 해 아래서 아무리 애써 수고한들
무엇을 얻겠는가?
인생이 사는 찰나의 순간 그가 어떻게 살았던 죽어 영원히 소멸된다면 당연히 헛된 것입니다. 그걸 알므로 아무렇게나 마친 듯이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헛되다는 것이 전도서의 결론은 아닙니다.
12장 8절 12절입니다.
“지극히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나는 기쁨을 주는 말을 찾고 진리의 정확한 말씀을 기록하려고 애썼다. 결론은 이러하다. 참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인생의 본질이 허무라면 기쁨을 주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고 진리가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인간이 그 본분 즉 창조주에 대한 합당한 경외심이 있다면 허무 즉 없어져 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기쁜 소식이며 진리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