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점이 있어도
사고력이나 언변, 통찰력이나 창의력, 체력, 외모, 재능 등등 여러 면에서 뛰어난 사람들은 많습니다.
도덕성에 있어서도 본이 되고 인품이나 처세에 있어서도 감동적일 정도로 귀감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정치적인 성향이 있고 정치적인 생각을 하고 정치적인 말을 하고 정치적인 행동을 할 수 있죠. 도덕성과 지략이 뛰어나면서도 장래가 촉망되고 많은 사람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 사람이 그러한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면, 학문이나 예술계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정치계, 종교계, 철학계라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렇다고 생각하거나 그렇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요.
동물들 중에서도 소처럼 힘이 세고 우직하고 순한 동물들이 있죠. 토끼나 사슴 같은 동물이 있고 외모가 화려하거나 소리가 아름다운 새들도 있고 늑대나 뱀 같은 동물도 있죠.
이처럼 인간들도 매우 다양합니다. 동물의 왕국이 매력적인 세상이듯이 인간 세상도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 그 세상에 대한 애착을 갖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몇 가지 비유를 들자면 하나는 그런 사람들의 세계, 동물의 왕국이 처해 있는 상태가 침몰하는 배 안이라면 그 모든 것이 무가치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아무리 훌륭하고 매력적인 특성을 지녔다 해도 인간으로서 그러해야 하다는 것입니다. 짐승으로서 그러하다는 것은 역시 의미가 없습니다.
성서에는 죽기 위해서 태어난 이성 없는 짐승(베후2:12, 유다 10, 시편 49;10)이라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이성은 영적인 사유의 기능으로 진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적용하는 기능입니다. 정치, 종교, 철학에 속한 모든 인간들에게는 없다고 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그들이 다른 면으로 아무리 뛰어나도 곧 죽어 없어져 그 모든 것이 철저하고 영원히 소멸되어 없어지는 것이죠. 짐승과 본질상 다를 바가 없는 것이죠. 또 진화론에서는 인간이 원래 그런 면에 짐승과 본질상 다를 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비유는 인류 연합체는 하나의 지체, 하나의 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인간은 뇌의 역할, 어떤 인간은 손이나 발의 역할, 어떤 인간은 눈이나 심장을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죠. 머리카락이나 발톱의 세포와 같은 역할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인간의 몸의 부분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짐승의 몸의 부분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어떤 짐승의 눈이나 코나 입은 인간의 그것보다 기능이 훨씬 뛰어날 수 있죠. 그러나 짐승이란 죽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눈, 귀, 코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성서는 나라들을 짐승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그러하죠. 아무리 뛰어나고 매력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어도 그 짐승의 일부라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다.
이성을 지닌 인간으로 이루어진 연합체인 인류는 하나의 지체에 비유되며 그 머리는 예수입니다. (에베소서 1:22)
예수가 머리인 사람의 지체의 일부가 되는 것 이는 드디어 짐승에서 사람이 되어 살 수 있게 해 줍니다.
침몰할 운명의 배에서 내려 구명선, 비유적인 방주에 타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