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꿈
당연히 현재라고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해 과거입니다. 100년이나 1,000년 10,000년 후의 미래는 틀림없이 있을 텐데 그때에 대해서 100년 전, 1,000년 전, 10,000년 전의 과거이죠.
또 인생은 일장춘몽 혹은 남가일몽 즉 꿈이라는 주장도 있죠. 인간의 자유분방한 창의적인 생각은 허황되기도 하겠지만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는 개인적 권위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를 들면 40세인 사람이라면 그 40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은 존재이지만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아 전생이 있었다고 하고 끊임없이 윤회하는 존재라는 주장도 있지만 전혀 무의미한 것일 수 있죠. 인간은 마땅히 영원해야 한다는 심리적 논리적 압력 때문에 그런 발상을 하는 것이죠.
인간 영혼의 두 축이 기억과 개성이라면 기억에 없는 과거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을 수 있다는 것이 법칙이기도 합니다. (전도 3:14)
현재 인간의 삶이란 많은 고난에 처해있기 마련이고 고난이란 삶을 거스르는 것이라 할 수 있기에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상상적으로 고안해 내죠. 즉 상상력의 효과를 보고자 시도하는 것입니다. 시름을 잠시 잊는 것이죠.
무신적 철학을 가진 사람들은 인간이 절망적인 한계상황, 극한상황에 처해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현재 존재하는 사람 중에 영원히 존재하게 될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그렇게 되는 것이죠. (신명기 30:19)
1,500년쯤 후 낙원이 된 세상에서 초원에 누워 잠시 잠이 들었는데 그때 꿈을 꾸었습니다.
모순되기 짝이 없고 재앙이 가득 한 이 세상에서 잠시 살았을 때의 과거생활에 관한 꿈이죠.
바로 현재의 고난스러운 삶은 미래의 꿈속인 것입니다. 꿈속에서는 어떤 해로움도 진정한 해로움이 아니지요.
자각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꿈인지 알고 꾸는 꿈인 것이죠. 현재는 미래에 꾸는 자각몽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 세상의 장면은 꿈과 같이 곧 지나갑니다.(고전 7:31, 요한 1서 1:17) 그리고 미래에 살 사람은 꿈을 꾼다고 하였습니다. (요엘 2:28 참조)
꿈이 달콤하기 때문에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랄 수 있지만 현재의 고난이 꿈과 같은 것이기에 얼마나 다행스럽습니까?
사람인 경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