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이 안 된다
대상에는 완전한 것을 따져야 하는 것이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필수적인 요소에서 한 가지라도 결함이 있는 자동차인 경우 없느니만 못한 것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결함만 있어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죠. 99.9%가 온전한 것이라도 결국 그러한 것은 무가치할 뿐 아니라 해로운 것입니다. 일시적으로만 작동하는 것일 뿐인 것입니다.
99.9%가 옳지 않느냐 하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답이 1,000인 수학 문제에서 999라고 쓰고 맞는 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죠.
어떤 사람이 뭔가 주장을 할 때는 일리 있는 면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듯하거나 기발한 면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주장하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사상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느끼므로 그것으로 책을 쓰기도 하고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기도 할 것입니다. 법도 만들죠.
인간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너무나 많은 주장들이 있습니다.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요. 학계에서도 그러하죠. 가설적인 많은 이론들이 있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한 가지 혹은 몇몇 면들이 있을 것입니다. 옳아 보이는 측면들이 틀림없이 있는 것이죠. 찬사를 받을 만한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국가나 정부를 예를 들어보면 국민의 공복으로써 가장 큰 일을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심지어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죠. (로마 13:4)
한편 국가는 가장 악한 범죄자이기도 합니다. 공식적으로 파괴와 살인을 하죠. 국가가 하는 긍정적인 역할이 아무리 많아도 그 존립의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는 정치적인 언행을 비롯한 모든 활동들이 그러합니다. 완전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99.9%가 옳다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완전하지 않은 법을 만들거나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런 학설을 주장하거나 책을 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면들과 관련하여 인간들은 완전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부실한 것들을 창출합니다. 부실한 말들을 하고 부실한 법을 만들고 부실한 정책을 만드는 것이죠.
그 모두는 본질적으로 무가치하고 해로운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와 자유, 행복과 풍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인생의 모습이나 세상의 상태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언행에는 허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언행의 내용이나 표현방식에 있어서요. 서로에 대해서는 그 허점을 공격하기 바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가 완전한 것을 제시할 수 있단 말입니까?
모든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상태는 완전하고는 전혀 거리가 멀죠. 겸허한 사람은 이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주제넘는 언행을 하지 않죠. 주장이라는 것을 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심각하게 불완전합니다. 임의로 뭔가 하는 것은 다 틀린 것이고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있습니까?
요한 5:19입니다.
아들은 단 한 가지 일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 행할 뿐입니다.
요한 12:49입니다.
내가 내 뜻대로 말한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무엇을 말할 것인지 친히 내게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분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내게 알려 주신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언행을 창조의 법과 일치하게 하는 유일한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려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는 것이죠.
이런 면은 획일적이고 강제적인 것입니다. 3+5가 8인 것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은 H2O인 것처럼요.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은 틀린 것이죠. 일을 하거나 무엇을 만드는 데는 유일한 옳은 것을 적용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상거래나 돈거래에 있어서도 한 치의 틀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만원을 내고 6,000원짜리 물건을 샀다면 4,000원이 거스름돈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교한 기기를 만들 때도 치수나 재료가 규정과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쓰면 안 되는 것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맞는 치수의 규정된 부품을 싸야 하는 것이죠.
어떤 영역에 있어서의 인간의 언행이란 그러해야 합니다. 반드시 관련된 표준을 알고 그와 일치하게 해야 할 뿐인 것이죠.
그러나 인간의 삶에는 그런 식으로 완전한 것인지의 여부를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무한한 영역이 있습니다.
점식식사로는 반드시 자장면을 먹어야 한다는 기준 같은 것이 전혀 없는 것이죠. 내일 등산해야 할 산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들어야 할 특정 노래가 정해져 있지도 않습니다. 어떤 선택이 완전한 것인지를 전혀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죠. 무엇을 선택하든 죄가 되지 않는 그런 영역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정해져 있는 완전한 것만을 선택하여 그와 일치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 영역이 있는 것입니다.
이를 분별할 줄 알아야 사람 즉 사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