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행복
지나치게 큰 행복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행복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죠. 누구나 무한히 행복할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능성이 아무리 있어도 개발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우주에 행복의 소여들은 지천으로 널려 있지만 인간이 누리는 행복의 양과 질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인간들은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원래 행복이란 부작용이 전혀 없고 유익만이 있는 것입니다. 뭔가 부작용이 있는 것은 일시적인 쾌락이 될지언정 진정한 행복은 아닌 것이죠. 불행의 원인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담배는 가급적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고 마약은 금하는 것이죠. 음란물도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면에서 행복을 느끼는 감성기능이 마비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치나 음악을 감상하는 감수성이나 심미안이 거의 개발되어 있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지극한 행복을 느끼는 그 동일한 대상에 대해서 그러한 것이죠.
일반적인 행복의 원천에 대해서 그러한 것입니다.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쾌락을 추구하게 되며 뜻대로 안 될 때는 투덜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병적인 욕구불만에 젖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툭하면 입에서 욕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행복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현상이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소여는 매우 다양하죠. 그중 하나는 사람에 대한 존경과 사랑에서 오는 행복입니다. 함께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여행을 하거나 일을 하는 것이 혼자 그렇게 하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행복한 것입니다. 함께 대화를 나누는 순간들은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4:13~15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내가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을 처음 전하게 된 계기는 내 몸에 병이 있어서였습니다. 그때에 내 몸의 상태가 여러분에게 시련이 되었지만, 여러분은 나를 멸시하지도 않았고 혐오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를 하느님의 천사처럼, 그리스도 예수처럼 맞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느꼈던 그 행복은 어디로 갔습니까? 내가 증언하는데, 여러분은 할 수만 있다면 눈이라도 빼서 나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예수는 당연 인류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분이었습니다. 인간으로서 모든 면으로 완전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제자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그분을 사랑하였을 것이고 함께 있는 순간은 가장 마음 편하고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매우 아름답고 선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에게 ‘천사표’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이죠.
위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신도들이 자신을 천사나 예수처럼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것이 그들에게 큰 행복이 되었음을 알고 있는 것이죠.
사실 사람이 동료 인간에 마치 천사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사실 인간은 동료인간에게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그렇게 될 수 있죠.
그렇다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큰 행복 중 하나를 상시로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런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인류의 상황은 또 다른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