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히 좋다
숲을 둘러보는 것은 언제나 감동을 줍니다, 심히 좋다고 느끼는 것이죠. 발길을 돌리기가 아쉬운 것입니다. 아마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느끼는 것은 인간의 의식기능에 내재된 장치에 의한 것입니다. 그 장치에 관한 것을 구체적으로 느끼고 인식하는 것 역시 큰 외경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창조주는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심히 좋았다고 피력하는 것입니다.(창시기 1:31) 천사들도 환호성을 지른 것이죠.(욥 38:10)
우주와 인간은 그렇게 형언할 수 없게 아름답게, 경이롭게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당연하고 마땅하게 모든 인간이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좋다고 느끼는데서 오는 행복을 얻을 수 있기도 하는 것이죠.
모순되게도 인간에게는 이미 큰 화가 미쳐 있고 인간의 입에는 저주가 넘쳐흐릅니다.
그런데 원래 만물은 그렇게 되데 창조되었습니다. 의식을 가진 피조물이 창조에 대한 합당한 인식을 가지 않을 경우 주면의 모든 것이 화로 작용하게 되어 있죠.
축복과 저주가 공존하여 인간이 선택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명 30:19) 어떤 누구도 복을 선택하거나 화를 선택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의 형상을 닮도록 만들어진 자신에게 있는 것이죠.
인간이 동료인간에게 욕을 하지 않는 것 저주를 퍼붓지 않는 데는 돈 한 푼 들지 않습니다. 신체적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힘이 드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이라고 규정된 것을 하지 않는 것이 결코 힘들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것도 도둑질이나 살인을 하지 않는 것 역시 힘이 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역한 것이고 힘이 드는 것이죠.
그러므로 인간이 화를 초래하는 악을 선택하는 것은 조금도 창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익한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간의 선택에 의해 재앙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되어 있죠. 저주의 법칙인 것이죠. 인간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유익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그 소중한 손을 인간이 얼마나 악하게 사용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죠.
창조에 대한 인식이 없어도 인간은 양심이나 죄의식 혹은 합리성이라는 것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범죄와 연루되어 법조계를 드나드는 정치인들을 보면 그런 것마저도 상실한 것이라고 느끼게 만듭니다. 능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죠. 감금이라는 화를 입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좋은 것에 대해 좋다고 느끼는 정상적인 인식을 지닌 사람들은 화를 자초하는 선택이나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그들은 결코 저주와 관련되지 않으며 화로부터 격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