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신과 인간의 경계

by 법칙전달자

신과 인간의 경계

여기서 신이란 창조주를 의미합니다. 창조의 근원, 만물의 제일원인이죠. 당장은 인격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만물을 생각할 때 물질적 우주가 생각날 것입니다. 그런데 만물이 운영되는, 그 현상을 지배하는 법칙은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근원적일 것입니다.


인간들은 많은 과학적인 법칙들을 발견해왔습니다. 인간에게 종합적으로 과학할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되어 과학적 발견과 발명을 할 수 있죠. 과학적 통찰력과 창의력을 사용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인간이 창조주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일종의 법칙이라고 한다면 이는 인간이 학문적 통찰력으로 알아내는 것이라기보다 창조주의 선언으로 알 수 있는 것이고 또 그렇게 선언되어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과연 그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만물뿐 아니라 신에 대해서도 그것을 대상으로 사고를 하죠. 마치 자신이 신이나 되는 것처럼. 이처럼 인간은 각각 만유의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식의 그러한 특성은 창조주에 의해 부여받은 것이라 감당할 수 없이 어마어마한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그런 면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신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 본질은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이점 역시 창조주에 의해 그렇게 선언되어 있죠.


이글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창조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기능과 관련해서 인간이 하도록 한 것이면 전적으로 그렇게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자유법칙과 관련되어 있죠. 처음부터 완전하고 절대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어서 철저하게 그렇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인간은 광합성을 만들지 못하죠. 만약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식량문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죠. 그런데 그걸 못하니 쌀을 만들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죠. 그런데 쌀로 밥을 할 것이냐 떡을 만들 것이냐 막걸리를 만들 것이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음식을 씹는 것은 인간이 하도록 되어 있죠. 그러므로 신이 강제로 인간의 아구를 움직여 밥을 씹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쌀을 재배하고 추수하고 도정하여 밥을 지어 씹어 삼키는 것은 인간이 할 일이죠. 그런데 일단 씹어서 넘기면 그것이 대변이 되어 대장에 있게까지 하게 되는 과정은 인간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건강한 인간이라면 그런 일이 자동적으로 진행되게 되어 있죠. 신의 일과 인간의 일의 분명한 경계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학문하는 능력을 주었으므로 그것으로 인간이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을 신이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중력을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을 주었기 때문에 그점을 인간에게 알려주는 것은 그런 기능을 준 목적과 상충되는 것이죠. 신적인 존재들은 창조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도 있고 나중에 스스로 귀신이 된 존재들도 있죠. 그들도 창조주의 운영원칙을 거스리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예들들면 우주의 역사와 관련하여 그들은 그 과정을 보아왔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몇억년전에 고생대라는 지질시대가 있었는지 공룡이 어떻게 멸망되었는지 빅뱅이라는 과정을 통해 우주가 시작되었는지 등등. 그런데 인간이 과학적인 능력으로 그런 것들은 알아낼 수 있는 기능을 주었고 또 그것을 사용하여 그런 점들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알려주지 않는 것이죠. 즉 인간이 할 수 있거나 하도록 되어 있는 것, 알 수 있거나 알아내도록 되어 있는 것은 신들이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신들로부터 그런 점들에 대한 계시가 전혀 없더라도 신이 존재하지 않는 근거로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점에 대한 인식부족에 기인한다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애초에 인간이 알 수 없거나 할 수 없는 것 그러나 인간의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신이 선언하거나 계시하는 것이죠. 그중에서 선악의 표준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알 수 없는데 알아내려고 한 결과 그점에 대한 생각은 자의적이고 제각각이죠. 결과는 선이 아니라 악이 지배하게 되었죠.


선언되는 것은 인간이 원리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할지 모르지만 순종이 요구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만물의 창조주가 도덕적 표준을 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고 선악과를 먹지 않음으로써 그점을 나타낼 수 있었죠.


어이없게도 인간은 신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규명하려 시도하였죠. 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요. 무신론과 유신론 그리고 범신론과 이신론 따위가 있는 것이죠.


그런 것들은 인간이 알아낼 수 없는 것이고 신이 알려줘야 하는 것이고 성서가 바로 그점을 알려주는 책이죠. 그런데 이점이 기독교에 의해 가장 왜곡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점들을 스스로 알아내려고 시도한 철학을 교리로 만들고 성서는 덮어버렸습니다. 초기에는 성서를 못보게 했지만 지금은 그 철학이 마치 성서의 사상인 것처럼 위장한 억지 해석들로 수만의 교파들이 있죠. 성서는 전혀 종교적인 책이 아니고 기독교하고는 더더욱 관련이 없습니다. 성서의 사상과 정반대되는 것을 교리로 만들었죠. 그러므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서가 어떤 책인지 모르고 그것을 여러번 읽어도 성서를 왜곡시킨 그 영향 때문에 잘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세상이 유물론이나 진화론 따위로 무신적인 된 것은 창조주가 아닌 다른 신 때문이죠. 창조주가 인간을 완벽하게 잘 만들었기 때문에 당신(창조주)이 선악과 따위로 관여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복할 수 있을거라고 도전했고 정말 그러한지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죠. 인간이 스스로 전적으로 마음대로 해보도록. 그러므로 인간들이 신적인 존재의 개입을 전혀 느끼지 않을 정도로 임의로 세상을 운영하죠. 물론 극소수의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확신할 뿐 아니라 가족처럼 지내죠. 신접무당들이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들 세계의 이야기는 단지 화제거리에 불과할 정도로 양성적인 세상의 무신기조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에게 애초에 알 수 없거나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일은 하려고 시도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종교나 철학이 있어서는 안되는 거이죠. 인간은 애초에 다른 인간을 통치할 능력이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통치하는 방법에 대한 철학인 민주주의 공산주의와 같은 것들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죠.

인간이 행복하려면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의 경계를 알아 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야 됩니다. 인간의 영역에서 알아내거나 할 수 있거나 즐길 수 있는 것이 무한합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무지하고 무능하고 불행하게 된 것이 바로 그 영역을 침범한 결과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머리로는 해결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