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실수와 잘못

by 법칙전달자

실수와 잘못


부정적인 것들은 꼭 해로운 것은 아닙니다. 완전하다고 해서 부정적인 현상들을 겪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몸에는 통각세포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세포가 있는 부위가 꼬집히거나 맞거나 찔리거나 뜨거운 것과 접촉하게 되면 고통을 느끼죠. 신체의 일부라도 머리카락처럼 통각세포가 없는 곳은 그렇지 아니합니다. 어류이하의 하등 동물은 통각세포가 없다고 하죠. 산채로 불에 굽거나 칼로 잘라도 아픔을 모르죠. 머리카락이 잘리는 것이 같은 것입니다. 잔인한 것이 아닌 것이죠.


고통은 부정적이지만 원래 내재된 것이죠. 인간신체의 완전함에는 그런 기능이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음도 그렇습니다. 고통을 비롯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기능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 자체는 유익한 목적으로 작동합니다.


현재의 극심하게 불완전하게 된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잘못이나 실수라고 할 정도로 그러한 것들의 뒤범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잘못이라고 할 때는 고의성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도덕적 논리적 잘못을 능동적으로 범합니다. 뭔가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울 때도 잘못을 범하기 마련입니다. 이 경우나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것은 원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관련 지식이나 사고력의 부족으로 어떤 인간도 그런 잘못을 범하죠.


도덕적으로 잘못을 범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 바가 아니라 그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취하기를 원하는 것이죠. 그런 것은 사악성이 수반되는 것이라 단지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훨씬 심각한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들은 쉽게 이런 죄를 범합니다. 지식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도덕적 영적 인식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는 있죠. 그것을 범죄로 규정하는 법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이 원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수는 ‘본의 아니게, 뜻하기 않게’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원한 것도 아니었고 의도한 것도 아닌 행동을 불가항력적인 부주의로 하게 되어 자신이나 남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역시 매우 자주 발생합니다. 그로 인한 책망이나 단죄의 강도는 전자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죠. 완전히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완전한 인간이라도 이런 실수는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까?

완전한 신체에도 해로운 미생물이 침투할 수 있죠. 그러나 면역 체계로 인해 해를 주지는 못합니다. 완전한 신체도 찔리면 조직이 파괴되고 피가 나고 고통을 느끼죠. 치유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치명상이 될 수 있죠.


의식을 가진 인간에게는 의식적으로 작동해야 할 면역시스템이 있습니다. 자동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혹시 실수하여 일시적으로 해를 입었다 해도 그것을 처리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다소간 시간이 지나면 회복하게 되죠.


인간의 정신에 어떤 불합한 것들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의식적으로 면역체계를 통해 방어하지 않고 그것이 증식하도록 방치하면 결국은 그것에 지배되어 행동하게 되어 치명적이 될 수 있습니다.


전쟁을 실수로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물론 “푸틴이 실수한 것이다.”와 같이 표현할 수 있죠. 이때의 실수는 오판을 의미하는 것이죠. 또한 ‘잘못’을 훨씬 상회하는 범죄가 되어 전범으로 사전 영장이 발부되어 있다고 하죠.


푸틴은 영토를 확장하기를 의도적으로 원했고 그것을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물론 그 계획에 허점 즉 잘못이 있어 성공하지 못하고 있죠.


이런 과정이 거의 예외 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 누구도 자기의 뜻이 시원스럽게 성공적으로 달성하지 못합니다. 의식작용의 모든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불가항력적 부주의로 필수적인 것을 누락시키는 것이죠.


그것은 애초에 침투한 박테리아를 증식시키는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해서는 안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바이러스의 침투와 증식을 차단하는 면역체계를 작동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원칙이 정신가운데 입력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거부했기 때문이죠.


인간의 그릇된 행동의 대부분은 원천적으로 실수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실수였다고 변명하여 참작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물론 육체의 약함이나 심한 인식부족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앞으로 다시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도록 그 행위를 반성하고 증오하게 된 경우는 예외입니다.


베드로는 육체의 악함 즉 심한 두려움에 굴복하여 예수를 세 번 부인했지만 바로 통곡하며 후회했죠. 문책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인 경우 욕정을 참지 못하여 이복누이를 강간하였는데 그로 인한 뼈저린 회개를 조금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강간을 통해 원하는 그런 성적인 환상적 쾌락을 얻지 못한 것에 화를 내었을 뿐이죠. 그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인간들은 불합한 것을 주제넘고 탐욕스럽게 추구하면서 나름 치밀하게 계획을 세울지 모르지만 그 자체가 심각한 잘못이고 원리적으로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타인들에게 큰 고통과 피해를 줄 수 있죠. 그런데 인간들은 일상과 같이 된 그런 습관을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그 모두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영원한 소멸일 뿐입니다.


면역시스템과 같은 치유 마련이 있습니다. 이를 받아들여 자신에게 작동시키고 있는 1,000만 정도의 사람만 사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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