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질투

by 법칙전달자

질투


인간의 감정은 심지어 신의 언어라고 할 정도로 생각과 더불어 인간 영혼의 한 속성입니다.


인간에게는 틀린 생각 혹은 악한 생각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감정도 부정적인 혹은 나쁜 감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올바른 생각이라면 그것에 고착해야 하듯이 정당한 감정이라면 그것을 억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개 질투 혹은 질투심은 대표적인 부덕한 감정으로 여겨집니다. 소위 군자가 갖지 말아야 함정인 것이죠.

성서 역시 질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고전 13:4) 그런데 한편으로는 ‘질투하시는 하느님’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원어적으로는 ‘전적인 정성을 강력히 요구하시는’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정당한 질투가 있다는 것이죠.


사람은 단지 자신의 배우자에게만 성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이성에게 성적인 접촉을 하는 것을 불쾌하게 느끼는 것은 부덕의 소치가 아닌 것입니다. 성적인 관심과 정성, 에너지는 전적으로 배우자에게만 쏟을 것을 강력히 요청하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한 것입니다.


배우자가 다른 이성과 단 둘이 함께 다정스럽게 교제를 나누거나 식사를 하는 등 성적인 교감을 나누는 것을 확인한다면 불쾌감이 솟구칠 수 있죠. 원래 성적인 것은 배우자에게 국한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그런 불쾌감은 부당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배신감을 느끼고 복수하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성적으로는 그러하지만 숭배의 성격을 갖는 모든 것은 전적으로 창조주에게만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0.1%라도 다른 쪽으로 향해 있다면 그것은 부당한 것이며 정당한 분노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창조주의 질투를 받을 수 있는 것이죠.


신명기 4:24입니다.

당신의 하느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며, 전적인 정성을 강력히 요구하는(질투하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불에 소멸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생명을 비롯하여 생명을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거저 부여받았습니다. 그에 대한 합당한 인식을 창조주에게 나타내는 것이 당연하죠. 모든 종교는 창조주 외에 다른 대상에게 그런 정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국가주의는 소위 조국이라는 것에 생명까지 바치는 정성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하죠. 배금주의라는 것도 있는데 돈이 신의 위치에 있는 것을 의미하죠. 과학만능주의는 과학을 신의 위치에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조주는 없는 것으로 여기죠. 모든 종교들에서 섬긴다는 신도 창조주가 아닙니다. 인간들이 관념적으로 고안해 내어 자신의 이득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으로 분노가 미치는 대상의 일 순위가 됩니다.

창조주의 복수의 대상인 것들입니다.


데후 1:6~10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환난을 가져오는 사람들에게 환난으로 갚으시는 것은 의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환난을 겪는 여러분은 우리와 함께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은 주 예수께서 자신의 강력한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타오르는 불 가운데 나타나셔서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우리 주 예수에 관한 좋은 소식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수하실 때에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주의 앞과 그분의 힘의 영광에서 떨어져 나가 영원한 멸망이라는 사법적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때에 그분이 오셔서 자신의 거룩한 자들과 관련해 영광스럽게 되시고, 믿음을 나타낸 모든 사람에게 그날에 경탄의 대상이 되실 것입니다.


어떤 질투나 분노와 같은 부정적으로 여기는 감정들은 악에 대한 증오와 같이 합당한 것입니다.

그러한 감정을 갖지 못하는 것이 비정상적입니다.


인간은 생각을 하고 느낌을 갖는 존재이지만 그러한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관리하고 통제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그러나 올바로 그러한 기능을 사용하는 것은 진리 즉 말씀을 알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날 널리 전해지고 있는 좋은 소식에서 그러한 진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행정과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