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카무플라주)
지구에는 도처에 물이 있습니다. 심지어 산꼭대기에도 물이 솟아 나오도록 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죠. 물은 인간의 신체에 대해서도 필수적 쓰임세가 있습니다. 배설 시스템과 관련된 것이죠.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죠. 씻지 않으면 보기에도 흉할 뿐 아니라 악취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상태로 사람을 만날 수 없죠. 몸뿐 아니라 옷도 그러합니다. 세탁하지 않으면 냄새도 나는 것이죠. 어떤 뿌리 깊은 냄새들은 질병으로 인한 것도 있는데 씻어도 잘 없어지지 않죠. 양치질을 해도 잘 없어지지 않는 구취 같은 것도 있습니다. 자신이 그러하다는 것을 민감하게 의식하는 사람들은 대인기피증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냄새를 풍겨 상대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게 하기 싫거든요. 고린내라는 표현이 있는데 잘 없어지지 않은 고려인의 발냄새를 표현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몸이나 옷뿐 아니라 방도 수시로 청소하지 않으면 냄새가 나기 마련이죠.
이런 면에서의 청결은 필수이기 때문에 삶에서 이런 면이 보장되지 않으면 정상적인 문화생활이 불가한 것이죠. 물은 이런 면에서 필수입니다. 씻고 세탁하고 청소하는 것은 조금도 위장이라고 할 수 없죠.
그러나 인간의 신체 특히 얼굴에서 씻어서 해결되지 않는 결함들도 있죠. 화장을 해야죠. 영상으로 노출된다고 하는 경우에는 메이크업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가수나 배우인 경우 필수라고 하는 것이죠.
이러한 흠결들은 없는 것이 이상적이죠. 사진이나 그래픽으로는 나타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림이나 만화영화 같은 데서는 얼마든지 그런 점이 나타나지 않게 할 수 있죠.
사람들이 화장 즉 어떤 면에서의 위장은 속이기 외한 것은 아닙니다. 예의이기도 한 것이죠. 결함은 언짢음을 느끼게 할 수 있으니까요. 피부 관리는 비난받지 않는 것이며 필수적인 자기 관리의 일환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속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모습을 노출시켜서는 결혼은 물론이고 상대가 만나주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위장을 넘어선 변장에 해당하는 수준이죠.
일종의 비극이죠. 결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전적으로 타의에 즉 외적인 어떤 원인에 의해 주어진 조건인 것입니다. 화장으로 안 되는 것은 성형이라도 해서 극복해야 하는 것이죠. 절대적 추함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씻지 않거나 운동을 게을리했다는 것과 같은 자기 관리의 부실이 원인도 아닙니다.
예수는 이런 현상에 대한 이유를 하느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피력하였습니다. (요한 9:3)
비약해서 결론에 이른다면 지금은 아무리 결함이 거의 없어 보이는 비교적으로 우월한 외모를 지녔다 하더라도 절대적인 관점에서는 현저한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위 민낯이라고 하는데 민낯으로 연기하는 배우는 없는 것입니다. 특히 대중들이 실물이나 영상으로 보게 되는 경우라면 세심하게 카무플라주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외모에 대해서 이렇게 하는 것처럼 속사람에 대해서는 꼭 동일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물론 많은 경우에 자신이 좋은 인간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위장을 합니다. 그래서 환심을 사거나 호의를 얻으려고 하죠. 위장된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니다 싶으면 일거에 추한 본색이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죠.
위장을 한 사람은 그것이 지워지면 그 본모습이 드러납니다. 화장이라는 것이 일상생활에서는 불편하기도 하기 때문에 샤워를 하여 그것을 지우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잠자리에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형을 하였다면 그렇지 않죠. 부작용 없는 성형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상당한 가치를 지닌 것이기에 거금을 들여 그렇게 하죠. 비난받는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인간 대다수는 그 속사람이 근본적으로 크게 성형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성형정도가 아니라 이식을 해야 할 정도로 병든 부분들이 많이 있죠. 완전히 새로운 인간성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그렇게 하는 데는 돈 한 푼 들지 않습니다.
“옛 인간성을 그 행위와 함께 벗어 버리십시오.”—골로새 3:9.
“새 인간성을 입으십시오.”—골로새 3:10.
인간성 전체를 개조하는데도 한 푼의 비용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은, 외모가 가장 뛰어난 사람의 외모보다 이렇게 한 사람의 변화될 외모가 비할 바 없이 뛰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고전 1:25)
조만간 생존세계에 있게 될 사람 중에 가장 추한 사람이 지금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수는 단지 죽음에서만 벗어나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궁극의 원인은 인간 자신이지만 타의에 의해 정해진 여러 선천적인 비극적인 조건을 지닌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이와 같이 할 하느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세상은 위장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로만 가득 찰 것입니다.